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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 "권력기관들 거듭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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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기존의 권력기관은 이제 국민을 위한 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선언했다. 나아가 "참여정부는 더 이상 권력기관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며 언제나 정정당당한 정부로서 국민 앞에 설 것"이라고 말했다.

盧대통령은 '권력기관 개혁'의 근거도 제시했다. "몇몇 권력기관은 그동안 정권을 위해 봉사해왔던 게 사실"이라며 "그래서 내부의 질서가 무너지고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고 냉랭하게 언급했다. 검찰.국정원, 좀더 범위를 넓혀 국세청.경찰청 등의 권력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에 나설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첫째 대상은 검찰이 될 전망이다. 盧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수사가 무혐의로 결론나자 "검찰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고 말했었다.

후보 합동토론회 석상에서도 검찰에 대한 불신을 토로했다. 여당 후보가 되기 이전인 국민회의 부총재 시절부터 盧대통령은 "모든 개혁의 시발은 사정.권력기관의 개혁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강금실(康錦實) 법무부 장관 인선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현재의 검찰 풍토에서 40대 여성인 康장관을 보낸다면 겉돌거나 휘둘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안다"며 "康장관이 적응할 수 있도록 곧 검찰 전반에 대한 제도적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적 물갈이와 이를 순조롭게 뒷받침할 제도적 개혁이 곧 병행될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구체적으론 그간 엘리트 수사검사들이 파견돼 온 법무부 검찰국 조직을 축소하고 검사의 법무부 파견 자체를 크게 줄일 전망이다. 대신 법무부엔 학계.시민단체 인사 등을 대거 수혈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검찰의 수사권 독립은 확실히 보장하되 법무부 장관이 계속 검찰 인사권을 유지토록 해 '무소불위 검찰'을 막는다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검찰에 비하면 국정원의 제도적 개혁은 다소 쉬운 편"이라며 "실무형 원장을 임명하고, 조직 정비는 대통령령 이하의 하위 법령으로도 충분해 후순위로 미뤄놓았다"고 말했다.

盧대통령의 3.1절 발언은 정권유지의 수단이 바뀐다는 의미도 있다. 이들 기관은 권력이 정.관.재계를 옥죄는 칼로 활용해왔다.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통치의 주요 수단을 포기하는 대신 국민의 다수 여론과 시민단체의 활동 등을 통해 국정 운용의 추동력과 에너지를 보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참여정부가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인데 그 때도 권력기관 활용의 유혹을 이겨낼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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