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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채용비리 공공기관은 사회 갉아먹는 암이나 마찬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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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요일인 그제 전국 83개 고사장에서 일제히 실시된 삼성직무적성검사(SSAT)에 9만2000여 명이 몰렸다. 원서를 낸 10만300명 중 학점·영어회화 등급을 충족하지 못한 이들도 있어 그나마 줄어든 숫자다. SSAT는 삼성그룹 입사의 첫 관문으로, 언어·수리·시사상식·판단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작년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자가 62만1336명이다. 이달 27일 치러지는 공인중개사 자격 취득시험에는 16만7035명이 원서를 제출해 놓았다. 7월 시행된 국가직 9급 공무원 필기시험에 14만7161명이 지원했던 것을 생각하면, 삼성그룹 공채시험도 이미 ‘국민 고시’ 대열에 들어선 셈이다.

 휴일에 중·고교 교실을 빌려 차린 고사장에 수백 수천 남녀 지원자가 긴장된 표정으로 들어서는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 아주 익숙한 풍경이다. 30년 전의 나도 그런 대열에 끼어 있었다. 한 기업에 지원할 때 그랬고, 언론사 입사시험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공기업은 ‘사회 지도층급’ 인사의 신원보증서를 원서접수 요건으로 명시한 탓에 별다른 연줄이 없는 나로서는 뜻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친구 중에는 더한 이들도 있었다. 원서가 아예 접수되지 않거나 시험 쳐본들 낙방이 예고된 거나 마찬가지인 경우로, 학생시위를 벌이다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 이들이었다. 영어고 상식이고 실력이 출중해도 번듯한 기업이나 몇몇 언론사는 ‘알아서’ 떨어뜨렸다.

 그 서슬 퍼렇던 5공화국 시절, 집안이 어렵던 한 친구가 뜻밖에 “대기업에 취직했다”고 알려왔다. 축하할 겸 만나 사정을 들어보니 안기부(국정원의 전신) 요원한테 연락이 와서 “얘기가 돼 있으니 OO기업에 응시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 친구만이 아니었다. 시위전력자들이 밥벌이마저 봉쇄돼 ‘영원한 사회불안 세력’으로 남을까 봐 안기부가 나서서 일부러 취업을 주선했다는 얘기였다.

 10만 명이나 몰리는 그룹 공채 제도를 놓고 삼성 내에서도 “너무 과열돼 걱정”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모양이다. 이해는 가지만 10만 명 중에 ‘응시 기회라도 주어지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젊은이가 상당히 많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본다. 30년 전과 비교도 안 되는 청년 취업난인 지금, 가장 질이 나쁜 것은 공기업·공공기관의 부정·편법·연고 채용이다. 물론 체제 유지를 위해서였겠지만, 정보·공작정치가 횡행하던 독재시절의 정보기관도 사회통합을 걱정해 일자리 주선에 나섰다. 채용비리를 저지르는 공공기관은 그런 안기부만도 못한 존재다. 국립대구과학관 불법채용 사건이 그렇고, 단체협약에 가족 우선채용 조항을 둔 33개 공공기관이 그렇다. 젊은이의 좌절감을 불러 사회 기반을 갉아먹는 암(癌)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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