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 나눠먹기 꼼수 … 그들의 기권은 각본이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7면

널리 인재를 구하기 위해 도입된 초등학교 교장 공모제가 일부 후보자들의 담합 행위 등으로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김세연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전수조사한 결과, 열에 한 명꼴로 담합을 통해 ‘교장직 나눠 갖기’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부는 올해 3월부터 한 사람이 2개 학교를 지원하되 지원자가 한 명일 경우 공모를 취소하도록 기준을 변경했다. 그러자 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담합 행위가 곳곳에서 나타났다.

 우선 가장 초보적인 방식은 두 학교를 두 명이 동시에 지원한 뒤 심사 과정에서 각각 한 곳씩을 양보해주는 형태였다. 전남 순천의 A초등학교 배모 교감과 B초등학교 문모 교감은 각각 순천의 ‘가’초등학교와 ‘나’초등학교에 복수 지원했다. 그러나 1차 심사도 받기 전에 ‘가’초등학교에선 배씨가, ‘나’초등학교에선 문씨가 각각 기권했다. 결국 ‘가’초등학교엔 문씨가, ‘나’초등학교엔 배씨가 각각 교장에 뽑혔다.

 여기서 좀 더 발전한 방식은 3명 또는 4명이 조를 이뤄 복수 지원하고 1차 심사 직후 기권하는 경우다.

경기도 광주시의 A초등학교 교감 박모씨와 군포시 B초등학교 교감 유모씨, 화성시의 C초등학교 교감 이모씨는 각각 ‘가’ ‘나’ ‘다’ 초등학교에 두 번씩 지원했다. 박씨는 ‘가·다’ 초등학교를, 유씨는 ‘가·나’ 초등학교를, 이씨는 ‘나·다’ 초등학교를 각각 지원했다. 1차 심사 이후 박씨는 ‘가’초등학교를 포기했다. 같은 식으로 유씨는 ‘나’초등학교, 이씨는 ‘다’초등학교를 포기했다. 결국 가초등학교엔 유씨가, 나초등학교엔 이씨, 다초등학교엔 박씨가 각각 교장으로 임용됐다. 이들 3명 중 유씨와 박씨는 경인교대 1년 선후배 사이인 것으로 나타났다.

 예상치 못한 ‘변수’에 의해 담합에 실패한 사례도 있다.

경기도 부천시와 광명시의 경우, 4명의 교감이 8번의 응모 기회를 이용해 4개 학교에 복수 지원했다. 이 중 양모씨와 이모씨, 임모씨 등 3명은 계획대로 원하던 학교의 교장직을 차지했지만 이모씨만 심사 과정에서 이들이 모르는 제3의 인물이 뛰어드는 바람에 교장직 임용에 실패했다. 이런 식으로 올해 3월 임용된 교장 230명 중 담합에 가담한 사람은 23명이며, 이 중 22명이 교장에 임용됐다고 김 의원은 주장했다.

 이런 문제점이 제기되자 교육부는 지난 9월부터 복수 지원 허용 여부를 교육청별로 자율적으로 판단토록 기준을 변경했다. 김 의원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고 여전히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것”이라며 “공모 교장 임용 과정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이 과정에서 담합 행위가 발견된 경우 교육감이 공모 학교 지정을 철회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장 공모제가 교감들의 승진용으로 활용되고 있는 문제점도 드러났다. 조사 결과 ▶교장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지원 가능한 초빙형의 경우 93.2%가, ▶교장 자격증 소지자 이외에 교육 경력 15년 이상인 교육공무원 등이 지원할 수 있게 한 내부형 공모제에선 94.3%가 교감이 교장에 임용됐다. 김 의원은 “외부 인사를 영입하자는 본래 취지와는 달리 교감들의 인사 적체 해소용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교장 중 일부는 공모에 응하면서 제출해야 하는 학교 운영 계획서도 표절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학교 교장의 학교 운영 계획서를 표절하거나 교육부·교육청의 업무 계획을 표절해 제출했음에도 교장으로 임명되는 경우도 있었다.

김경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