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열음 '일본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초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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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사무라고치

‘일본의 베토벤’으로 불리는 청각장애 작곡가 사무라고치 마모루(佐村河<5185>守·50)의 피아노 소나타를 세계 초연 중인 피아니스트 손열음(27)이 도쿄 공연을 하루 앞둔 12일 본지와 인터뷰를 했다. 사무라고치가 동일본대지진 희생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2번에 대해 손씨는 “대지진 피해자들은 물론 항상 자연재해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사는 (일본) 사람들을 음악으로 치유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히로시마(<5E83>島) 원폭피해자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무라고치는 37세 때 청각을 완전히 잃은 뒤 소리의 진동에 의지해 곡을 쓰고 있다.

 손씨와는 일면식도 없었으나, CD로 접한 열정적 연주에 매료돼 지난 4월 “내 곡을 가장 잘 표현해 관객들에게 전달할 유일한 음악가”라며 피아노 소나타 1, 2번의 초연을 손씨에게 부탁했다. 손씨는 “사무라고치에게선 천재들이 갖고 있는 순수함이 느껴진다”고 했다. 13일 도쿄 오페라시티 콘서트홀에서 열린 손씨의 공연은 지난달 요코하마(<6A2A>浜)공연에 이은 두 번째 무대. 피아노 연습실에서 만난 손씨는 지독한 감기에 걸렸지만 인터뷰 내내 씩씩하고 거침이 없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씨는 “사무라고치 마모루는 엄청난 에너지의 작곡가다. 내가 자신의 곡을 가장 잘 표현해 관객들에게 전달할 유일한 음악가라며 초연을 부탁했다”고 전했다. [중앙포토]

 - 작곡가와의 인연은.

 “지난 4월에 처음 만났고 그전엔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일본에선 너무나 유명했고, 함께 공부하는 일본인 친구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 피아노 소나타 1번과 2번 모두 세계 초연이다. 왜 연주를 부탁했다고 말하던가.

 “다른 피아니스트들도 모두 찾아본 것 같았다. (나를 선택한 건) 열정적인 에너지를 갖고 있다는 점, 또 기술적으로도 본인이 아무리 어려운 곡을 써도 소화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 작업을 함께한 사무라고치는 어떤 음악가인가.

 “함께 작업한 다른 작곡가들과 달리 그는 ‘열음씨가 잘 알아서 할 것으로 확신한다. 모든 것을 알아서 맡기겠다’고 했다. 곡에서 느낀 그의 에너지는 일반 사람의 몇만 배쯤 되는 것 같다. 그는 피아노에 손을 대고 울림을 느낀다. 카페에선 벽에 손을 댄 느낌으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곡을 정확하게 맞춘다.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다.”

 - 평소 ‘요리사로서 (레퍼토리가) 나와 맞는 재료인지 양념인지 따져본다’고 말했는데, 이번 곡은 어땠나.

 “소나타 2번은 나를 위해 작곡한 것이다. 4월에 만났을 땐 동일본대지진 희생자들을 위한 10분짜리 진혼곡이었다. 그걸 5월 말까지 40분짜리 소나타로 다시 만들었다. 저를 위해 써준 곡이니 잘 맞는다. 1번은 작곡가의 자전적 내용이고, 2번은 진혼곡이다. 대비가 될 수 있도록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지난 2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스물일곱이 되면 내 요리를 시작해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달라진 점이 있다면.

 “생각이 좀 바뀌었다. 레퍼토리에 대한 욕심이 많아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세상에 있는 곡들을 다 쳐보려 했었다.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쳐야 외우기도 쉽고, 나이가 들면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너무 ‘습득’ 위주가 되는 것 같아 서른 살 때까지는 그동안 쳐본 곡들 중 깊이 연구하고 싶은 곡들을 다시 치려고 생각을 바꿨다.”

 - 일본 청중들의 반응은 어떻게 다른가.

 “박수도 뜨겁게 치는 편이 아니고 조용하다. 2002년 첫 공연 때는 많이 놀랐다. ‘나를 안 좋아하나’라고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일본 청중들은 확실히 반응이 오래간다. 뒤에 찾아와 곡에 대해 토론하려 하고, 보다 깊이 알고 싶어한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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