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만원 아낄 수 있는데”…‘다운계약’의 달콤한 유혹

조인스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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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일기자] 서울에 사는 장모(66)씨는 최근 결혼을 앞둔 아들에게 줄 수도권의 아파트 분양권을 사면서 다운계약서를 썼다. 장씨는 아파트 분양가 3억2000만원 외에 2000만원의 웃돈을 주고 분양권을 매입했는데 실제 계약서엔 분양가 수준으로 적었다.

2000만원을 ‘다운’ 계약한 것이다. 장씨는 “매도자가 단기 매매여서 양도소득세가 비싸다며 다운계약을 요구했다”며 “다운계약서를 써주면 중개수수료를 자신이 내주겠다고 해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보통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 많이 하는 다운계약이 최근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부동산 경기가 썩 좋지 않지만 양도소득세를 줄이기 위한 다운 계약이 성행하는 것이다.

양도세 줄일 목적으로 다운 계약

다운 계약은 실제 거래가격보다 계약서에 가격을 낮게 적는 것을 말한다. 부동산 경기가 좋던 2000년대 중반 다운계약이 성행하기도 했는데, 다운계약으로 매도 차익을 줄여 양도소득세를 아끼려는 경우였다.

사는 사람 역시 집값이 오르면 되파려는 투자자라면 다운 계약이 불리하지만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는 매도자 우위 시장이 형성돼 어쩔 수 없이 매도자의 다운계약 요구를 들어주는 경우가 많았다. 직접 들어가 살려는 실수요자라면 다운계약 요구를 더 잘 들어줬다.

최근의 다운 계약은 모처럼 장이 선 분양권 시장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동탄2신도시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분양권 전매제한 기간이 지난 데다 2000만~3000만원씩 웃돈이 붙으면서 다운 계약을 요구하는 매도자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분양권의 경우 단기 매매여서 양도세가 많이 나오는 편이다. 2년 보유기간을 채우지 못하면 차액에 대해 44%를 양도세로 내야 한다.

예컨대 웃돈이 5000만원이라면 기본 공제와 누진 공제를 제외한 양도 차익에 대해 44%의 양도세를 내야 하는데, 이 경우 양도세는 2000만원 정도다.

세종시?혁신도시 분양권 다운 계약 성행

하지만 계약서상 웃돈을 1000만원으로 다운할 경우 양도세는 300만원 안팎으로 줄게 된다. 계약서상에서 4000만원만 빼면 양도세를 확 줄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동탄2신도시는 물론 집값이 오름세인 세종시?혁신도시 등지에서도 이런 일이 잦다.

세종시 A공인 “매수자가 실수요자인 경우 양도세에 거부감이 없어 집주인의 다운 계약 요구를 잘 들어준다”고 말했다. 세종시에선 지난 5월에도 다운 계약서 등 불법 거래 3건이 적발되기도 했다.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이 해양수산부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부산 대연혁신도시에서도 다운 계약이 이뤄진 것으로 의심된다. 혁신도시 내 아파트 분양가(84㎡형 기준)는 2억9000만원인데 이전 공공기관 임직원 두 명이 지난 6월 나흘의 시간 차를 두고 각각 3억891만원과 3억7429억원으로 실거래가 신고를 했다.

김 의원은 “분양가가 같은 두 아파트의 실거래가 차이가 크게 나는 것은 금액이 적은 쪽이 다운 계약서를 썼다고 추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이 아파트의 시세는 3억원 후반대에 형성돼 있다.

시장 분위기가 좋은 분양권 시장에서만 다운 계약이 성행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서울 강남권 중대형 아파트를 중심으로 다운 계약이 번지고 있다. 바로 정부가 4?1 대책에서 내놓은 양도세 면제 때문이다.

전문가들 “처벌 수위 높여야”

정부는 전용면적 85㎡ 이하이거나 실거래가가 6억원 이하 주택을 연말까지 구입하면 5년간 양도세를 면제키로 했다. 그러자 6억~7억원 안팎에 시세가 형성된 중대형(전용면적 85㎡ 초과) 단지에서 6억원 이하로 다운계약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실제로 서울 중계동의 한 아파트 전용면적 115㎡형의 경우 경우 5억9900만원이나 5억9000만원에 실거래가 신고가 이뤄지고 있다. 서울은 물론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등 중대형이 많은 지역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중계동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사실 양도세 면제 혜택 기준에 가격을 넣으면서 어느 정도 예견돼 있던 일”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기존 주택 매매 때의 다운계약은 매도자가 아니라 매수자의 요구로 이뤄지고 있다는 게 분양권 시장의 다운계약과는 다소 다른 현상이다.

현행법상 다운계약은 엄연한 불법이다. 하지만 단속을 해도 적발이 쉽지 않다 보니 다운계약이 성행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다운계약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고 중개업소 등을 대상으로 다운 계약에 대한 경각심을 지속적으로 일깨워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재 다운계약서를 쓴 중개업소는 영업정지 등의 행정처분을 받고, 다운계약서 거래 당사자들에겐 과태료가 부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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