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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사태 진퇴양난 … 뒷북도 못 치는 금감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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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동양증권 개인투자자들이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열린 ‘동양채권자 비상대책회의’에 참석해 개인투자자 보호를 촉구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비판이 두려워 뒷북도 못 친다(?).’

 금융감독원이 10일 동양증권의 회사채·기업어음(CP) 판매를 금지시키려던 결정을 보류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5만 명의 피해자가 생기니까 이제야 못 팔게 하느냐”는 여론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라는 시각이 많아서다.

 금감원은 이날 제재심의위원회에 올라온 ‘지난해 동양증권의 신탁자산 불완전판매에 대한 징계’ 안건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밝혔다. 이날 안건은 올해 동양증권의 정기 종합검사 결과 지난해 8월 회사채·CP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신탁계좌를 가진 고객에게 판 사실이 적발됐다는 내용이었다. 금감원은 원래 동양증권에 일부 영업정지(회사채·CP 판매금지)라는 중징계를 내리고 관련 임직원을 징계할 계획이었다.

감독 소홀 책임론 확산 우려해 보류

 이에 대해 금감원의 공식 입장은 “향후 동양증권의 특별검사 결과가 나오면 그 내용과 합쳐 징계 수위를 결정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부 속사정은 다르다. 금감원의 한 인사는 “위원회에서 영업정지를 해봐야 그동안 손실을 본 투자자의 감정만 폭발시키는 역효과를 낼 거라는 의견이 많아 이런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징계 발표를 미룬 또 다른 이유는 동양증권의 고질적인 불완전판매를 방치했다는 책임론이 확산되는 걸 우려해서다. 금감원이 동양증권을 불완전판매로 처벌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작년 적발 때 확실한 조치 했으면”

금감원은 지난해에도 동양증권의 정기 종합검사 결과 “2011년 6~11월 직원들이 신탁을 통해 CP 4329억원을 팔면서 전화로만 주문받고 신탁계약서를 쓰지 않았다”며 동양증권에 기관경고 조치를 내렸다. 그런데 올해 종합검사에서 똑같은 형태의 불완전판매가 또다시 적발됐다. 금감원이 감독소홀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금감원이 지난해 불완전판매를 적발한 뒤 확실한 재발방지 조치를 했으면 피해자를 훨씬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동양 사태에 대한 금융당국의 책임론을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기식(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금감원은 2009년 5월 동양증권과 ‘계열사 CP 보유규모 감축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김 의원은 “동양증권은 2010년 말까지 1522억원을 줄였지만 2011년 6월부터는 오히려 다시 크게 늘었다”며 “동양증권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는데도 금감원은 MOU 이행을 두 차례 촉구했을 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아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이날 감사원에 “금융위원회·금감원의 부실관리 책임을 규명해달라”며 감사를 청구했다. 경실련은 “금융위는 위험등급 계열사 회사채·CP를 금융회사가 팔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의 시행을 늦춰 투자자들이 피해를 보게 했다”며 “금감원은 과거 동양증권의 불완전판매 사실을 적발하고도 기관경고나 과태료 부과로 그쳐 결과적으로 부실 계열사의 기업어음 판매를 묵인했다”고 청구 이유를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지난 8일 정홍원 국무총리에게 동양그룹 법정관리 이후의 금융시장 동향과 투자자 피해 지원방안을 보고했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보고서에서 “동양그룹 문제가 기업자금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회사채 시장의 양극화 문제가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불완전판매 의혹과 관련해서는 “투자자 600여 명이 요청한 국민검사청구는 심의를 거쳐 적극 수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대주주·경영진이 계열사 CP 판매를 독려했는지, 대주주의 은닉재산이 있는지 끝까지 추적하겠다”고 밝혔다.

금융당국 "국민검사청구 수용”

 동양그룹 계열사의 주가조작 의혹도 제기됐다. 금감원은 이날 “동양네트웍스와 동양시멘트가 법정관리 직전 누군가 시장에 루머를 유포해 주가를 끌어올린 정황을 포착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달 25일부터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이 ‘최악의 사태는 없으며, CP 자금을 정시 상환 지급하겠다’고 말했다”는 내용이 온라인 메신저를 통해 퍼졌다. 이후 동양네트웍스·동양시멘트의 거래량이 크게 늘어나며 주가가 급등했다는 게 금감원이 파악한 내용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동양그룹 내부를 비롯해 정보의 출처를 다각도로 살펴볼 것”이라고 전했다.

 동양그룹의 ‘사금고 역할’ 논란에 휩싸인 동양파이낸셜대부의 실체도 점점 드러나고 있다. 동양파이낸셜대부는 동양시멘트·㈜동양으로부터 자금을 받아 동양레저·동양계열사에 부당 대출을 해준 의혹을 받고 있다. 또 동양파이낸셜대부가 빌려준 돈이 CP 돌려막기에 쓰인 정황도 포착됐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동양파이낸셜대부의 대출잔액은 약 1000억원으로, 이 중 860억원(86%)이 동양그룹 계열사 대출금이다. 일반 개인에 대한 신용대출과 타 기업에 대한 대출금은 전체의 14%(140억원)에 그쳤다. 이런 가운데 동양자산운용의 펀드에서는 지난달 말 동양그룹 유동성 위기가 불거진 뒤 1조원이 넘는 자금이 빠져나간 것으로 나타났다.

글=이태경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국민검사청구

금융회사의 불법 행위로 피해를 본 투자자(200명 이상)가 금융감독원에 직접 검사를 요구하는 제도. 금감원 검사 결과의 공정성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소비자보호심의위원회에서 청구를 받아들이면 금감원은 전수조사와 같은 강도 높은 검사를 해야 한다. 지난 5월 도입된 뒤 ‘은행·증권사의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의혹’이 1호로 청구됐지만 기각됐다. 이달 8일 ‘동양증권 불완전판매로 인한 대규모 금융소비자 피해’가 2호로 청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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