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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로 중앙선 넘어 교통사고, 건강보험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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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대전에 사는 김모(71)씨는 2011년 7월 전북 무주의 한 다리에서 차를 몰다 중앙선을 넘어 사고를 냈다. 마주 오던 25t 트럭과 충돌한 뒤 다리 밑으로 추락하면서 몸 일부가 마비되는 뇌병변장애를 입었다. 그는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진료비 3109만원(건강보험 급여)을 지원받아 부담을 덜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공단에서 지원한 돈을 다시 반납하라고 했다. ‘중앙선 침범’은 교통사고 원인 중에서도 운전자 책임이 큰, 이른바 11대 중과실이기 때문에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법원은 이런 공단의 결정을 뒤집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 8월 11일 서울행정법원 1부(부장 이승택)는 김씨가 공단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환수 처분 취소 소송에서 “환수 처분을 취소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중앙선 침범은 짧은 시간의 전방 주시 태만, 운전대 조작 실수 등 매우 경미한 사유로도 발생할 수 있다”며 “이로 인해 사고가 났다고 보험급여를 제한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밝혔다. 공단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법원 판결처럼 건보공단이 급여제한 기준을 너무 엄격하게 적용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은 ‘고의 또는 중대과실’일 경우 급여를 제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고의사고는 음독·투신·분신 등의 자해 행위가 대표적이다. 중대과실은 강도·절도·방화 같은 강력범죄와 무면허·음주운전 등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서 규정하는 이른바 11대 중과실이 포함된다.

 강력범죄나 의도적 사고는 건보 혜택을 제한하는 게 타당하다. 문제는11대 중과실의 경우 그대로 적용하기엔 애매한 측면이 있다는 점이다. 현행 규정대로라면 깜빡 졸거나 운전이 미숙해 신호를 위반하거나 중앙선을 살짝 넘어가 사고를 낼 경우에도 건보 적용을 못 받기 십상이다.

 중과실 중에도 제한적으로 건보 적용을 하는 경우가 있긴 하다. 빙판길이라 노면이 미끄럽다거나, 장애물을 피하기 위해 중앙선을 침범하는 등 외부 요인이 있을 때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공단에는 매년 51~84건의 교통사고 관련 이의신청이 접수됐는데, 이 중 8~18%만 받아들여졌다. 공단 관계자는 “대부분 11대 중과실과 관련한 이의신청이어서 기각 비율이 높다” 고 설명했다.

 법률사무소 해울의 신현호 대표변호사는 “입법기술적으로 중대한 과실은 특정할 수는 없고 상식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며 “중대한 과실로 볼 만한 명백한 정황이 없다면 경과실로 보자는 것이 법의 취지”라고 말했다. 경실련 남은경 사회정책팀장은 “공단으로서도 교통사고처리특례법 기준을 가져다 쓰는 것이라 자의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모호한 부분이 있다면 모법(건강보험법)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장주영 기자

◆11대 중과실=교통사고처리특례법 3조에 규정돼 있다. ▶신호위반 ▶중앙선 침범 ▶제한속도 20㎞ 초과 ▶앞지르기 위반 ▶철길건널목 통과 위반 ▶횡단보도 보행자 보호 의무 위반 ▶무면허 운전 ▶음주운전 ▶보도 침범 ▶추락방지 의무 위반 ▶어린이 보호 구역 부주의 등이다. 자동차보험 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형사처벌된다. 건강보험법에서는 중대 과실로 간주해 급여 제한 사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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