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오바마의 보호무역주의를 우려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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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삼성전자가 애플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미국무역위원회(ITC)의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유감이다. 지난 8월 3일 애플이 삼성전자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ITC의 판정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과는 정반대의 입장을 취한 것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애플의 경우 ‘표준특허’가 문제였지만, 삼성은 일반 ‘상용특허’를 침해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25년 만에 소비자의 이익을 내세워 거부권을 행사했던 오바마 행정부가 불과 두 달 만에 정반대로 입장을 뒤집은 명분치고는 너무 궁색하게 들린다. 자국 기업인 애플은 편들고, 삼성전자에만 편파 판정을 내린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다.

 이번 수입금지 대상이 대부분 구형 모델이라 삼성전자가 입을 직접적인 피해는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애플=창조기업, 삼성전자=모방자’라는 이미지가 굳어지는 게 문제다. 이로 인해 삼성이 입을 간접적인 피해는 가늠하기 힘들지 모른다. 더욱 걱정스러운 대목은 오바마 행정부의 고무줄 잣대에 어른거리는 보호무역주의의 먹구름이다. 그동안 미국은 소송이나 벌금 부과 등을 통해 지적재산권 보호의 국제적 흐름을 주도해 왔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도 강력한 지적재산권 보호 조치를 요구해 왔다. 그런 오바마 행정부가 정작 애플과 삼성전자의 특허 공방에는 이중잣대를 들이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국제적 균형을 의식했다면 지난 8월의 거부권 행사를 자제했어야 했다. ITC 판정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소비자 이익을 명백히 침해하거나 국가 안보나 국가 기간망에 관련된 사안에만 국한하는 게 마땅하다. 팔이 안쪽으로 굽는 것처럼 자국 기업은 감싸 안고, 외국의 경쟁기업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노골적인 보호무역주의나 다름없다. 삼성전자는 이번 판정에 반발해 항고를 예고하고 있다. 우리는 미국이 어떤 최종 결론을 내릴지 끝까지 지켜볼 생각이다. 보호무역주의의 오해를 사지 않으려면 자국 기업과 외국 기업 차별부터 하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