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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 영장…진통 6시간|김 후보 집 폭발물 조카 홍준 군이 구속되기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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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7면

김대중 신민당 대통령 후보 집 폭발물 사건의 범인으로 단정된 김홍준 군의 구속 영장은 신직수 검찰 총장과 이봉성 차장 검사 등 대검찰청 고위 간부가 퇴청하지 않고 영장 발부 여부를 몇 번씩이나 확인하는 등 긴장된 분위기에서 수사 검사 등 4명의 검사가 번갈아 판 사실을 드나들며 설득 작업을 벌인 끝에 5시간45분 동안의 진통을 겪은 뒤 발부됐다.
이날 영장 담당인 조준희 판사는 처음 3시간 동안 기록을 검토한 뒤 『집안에서의 장난인 소년 범을 구속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고 한때 영장 발부에 난색을 표시, 심리를 보류하기까지 해 검찰 측과 약간 승강이를 벌이기도 했으나 하오 10시45분 구속 영장에 서명했다.
이 사건 수사를 지휘한 박준양 부장 검사가 신청한 4백여 페이지의 수사 기록이 형사 지법 영장계를 거쳐 601호 조 판사실에 넘겨진 것은 하오 5시.
조 판사가 기록을 검토하기 시작하자 15분쯤 서동권 검사가, 이어 6시엔 공안부 박종연 검사가, 7시에는 박준양 부장 검사가 잇달아 들어가 조 판사와 마주 앉았다.
판사실 밖에는 사복 경찰관 2명이 지켜서 기자들의 접근이 금지된 가운데 2시간이 지났다.
잠시 후 서 검사가 나와 김용제 검사장실에 들어갔는데 다시 판사실로 들어가며 『소명 자료를 보강하기 위해 나왔다』고 말하여 영장 발부가 난항임을 비쳤다.
8시20분 박 부장 검사가 판사실에서 나와 검사장실에 들어간 뒤를 이어 서 검사도 나왔으나 8시35분에는 서정각 차장 검사가 긴장된 얼굴로 급히 뛰어들어갔다. 서 차장 검사는 『증거는 충분한데 소년이 장난으로 범행을 했다고 영장을 발부해 주지 않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이번 사건이 결코 작은 사건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사회 질서를 파괴하고 국민을 불안케 한 점 등 사건의 성격을 파악해 달라』고 판사에게 말했다.
서 차장은 약 20분 동안 조 판사실에 머무르며 박·서 두 검사와 함께 검찰이 보는 이 사건의 중대성과 구속 영장이 발부됨으로써 배후 관계 등 2단계의 수사를 철저히 할 수 있다는 검찰의 입장 등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판사실 밖으로 나온 서 차장 검사는 기자들에게 『증거가 없으면 판사의 소신대로 기각해도 좋다. 그러나 증거는 충분한데 범인이 소년이고 집안에서의 딱총 놀이라고 기각한다면 말이 안 된다. 비록 행위는 철없는 소년의 짓이라고 하나 사회적으로 끼친 영향 등을 고려한다면 결코 작은 일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어린이가 불장난을 해서 곧 꺼진 경우와 불이 붙어 가재 일부를 태웠을 경우 같은 장난이라도 꾸중을 듣는 형태가 다른 것이라는 이론을 판사에게 말해 조 판사가 이해하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8시46분이 넘도록 영장 발부의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자 박 부장 검사는 『소명 자료를 가져오라니 무슨 소명 자료가 필요한가』고 가벼운 짜증을 내기도 했으나 계속 드나드는 검사들의 굳은 표정은 영장 발부에 상당한 진통을 겪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9시7분쯤 조 판사가 『강력한 범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말하자 서 검사가 무엇이라고 한마디하며 판사 책상 위에 놓인 기록을 집어들었다. 이때 조 판사는 쓴 표정을 지으며 『서 영감,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며 굳은 표정으로 쳐다보아 한때 긴장감을 일으키기도 했다.
9시10분 서동권 검사가 빠른 걸음으로 판사실을 나가자 조 판사는 기자들에게 『아무것도 이야기하기 싫다』고 했으나 『발부인가, 기각인가, 또는 검사가 영장 신청을 철회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보류라고만 말했다.
그는 이어 『영장도 일종의 재판이다. 어디 이럴 수가 있느냐』며 침통한 표정을 짓고는 『모두들 이 방을 나가달라』고 했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공안부의 박종연 검사도 3층 검사장실 복도로 내려갔고 조 판사는 입회 서기와 함께 부근 식당으로 갔다.
10시7분 조 판사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자 36분, 박 부장 검사와 서 검사가 수사 기록과 영장을 들고 다시 들어갔다.
검찰은 판사가 저녁을 들고 있는 동안 김 군이 그 동안 수사진을 피해 다녔다는 관계인들의 진술 등을 보강해 왔다.
45분 박 부장·서 검사에 이어 숙직 서기가 영장과 기록을 들고 나왔다. 9분만에 영장이 발부된 것이었다.
조 판사는 『기록이 방대해 검토하느라고 시간이 걸렸다. 소년 범은 부득이한 경우에만 구속 영장을 발부하는데 이번 사건은 부득이한 경우로 보았기 때문에 영장을 발부했다. 또 검찰에서 도주 우려에 대한 소명 자료를 충분히 해왔다』고 말했다.

<알림> 김홍준 군은 15세의 소년으로서 보도 기사에는 성명을 밝히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번 사건의 성격상 부득이 본명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만 김 군의 사진은 게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선거 기 앞두고 국민 여론 혼란케 할 것을 결의하고>15세 소년 구속 영장 전문
『피의자 김홍준은 청운 중학교 제2학년 재학중인 자로서 평소 완구용 폭음탄·로키트탄 등을 구입하여 장난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는바 백부이며 신민당 대통령 후보인 서울 마포구동교동 178의 1 거주 김대중 가에는 평소에도 출입할 뿐더러 1970년12월24일부터는 겨울 방학이므로 계속 동 가에서 유숙타가 동 김대중이 1971년1월25일 도미하게 되자 부재중인 틈에 폭발물을 동 가에서 폭발시키며 마치 정치인 테러 행위가 발생한 양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고 특히 선거 기를 앞두고 국민 여론을 혼란케 할 것을 결의하고 ㈀1971년1월26일 오후 6시경부터 동 9시경까지 전시 김대중 가 접견실에서 당국의 허가 없이 기히 입수 준비한 다량의 어린이 딱총 등 화약을 까서 분말로 모아 종이에 둥글게 싼 후 아래위에 종이 마개를 하고 공업용 도화선 (길이 30㎝) 1개를 동 화약 부위와 접촉토록 부착시킨 후 전선용 테이프로 외부를 감아 화약류인 화공 약품 1개를 제조하고 ㈁동월 27일 21시30분 경 동 가 응접실에서 TV를 시청타가 용변을 하는 양 나와서는 위 폭발물을 은닉하여 둔 별채 접견실로 가서 이를 가지고 나와 식당·부엌에 들어가서 도화선에 불을 붙여 이를 현관 앞 응접실 서 창문앞 마당에 놓아 약 30초 후인 동일21시37분경 폭발케 하여서 동 폭음으로 인근 주민 등에게 불안감을 야기케 함은 물론 일부 주민 등으로 하여금 정치적인 폭력 사태가 발생한 것 같이 인식케 하는 등 사회 공안을 문란케 한 자로 도망 및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는 자 임』.

<홍준 군 폭발 때 방안에 없었다>가정부 진술서 등 보전 신청
검찰은 이날 하오 김 군의 구속 영장과 함께 김 군을 범인으로 단정하는데 결정적 단서가 된 김 후보 집 가정부 조행덕 양 (22)의 진술 조서 및 녹음 테이프 1권을 서울 형사 지법에 증거 보전 신청했다.
서울 형사 지법 이철환 판사가 모두 11개의 문답으로 구성된 진술 조서를 확인하고 가정부 조양으로부터 진술을 듣는 자리에는 서울지검 박준양 부장 검사와 서울시경 강력 계장 김공환 경정 등이 1시간 동안 입회했다.
조 양의 증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문=김 군이 폭음 소리가 나기 수분전 자리를 떠나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온 일이 있는가?
▲답=나간 것은 모르겠으나 텔리비젼을 보는 도중 앉았던 자리를 비운 것만은 사실이다. 바로 그 자리가 비어 있어 다리를 뻗고 쉬었다.
▲문=김 군이 저녁 식사를 다른 식구들과 같이했는가?
▲답=저녁 8시쯤 떡국을 들고 할머니 방에 들어갔는데 없었다. 9시쯤 나타났기에 어디 있었느냐고 물으니까 『잤다』고 대답했는데 얼굴을 보아 잔 것 같지 않았다.
▲문=폭음이 들리자 김 군이 어떻게 행동했나?
▲답=마당쪽 유리창을 열고는 밖을 향해 보일러가 터졌다고 고함쳤다.
▲문=폭음 소리가 들린 곳과 보일러가 있는 곳은 같은 방향인가?
▲답=소리가 들린 곳은 그 당시 (텔리비젼을 보느라 앉은 자세로) 왼쪽이었고 보일러는 바로 맞은편에 있다.
▲문=보일러가 터졌다는 말을 듣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나?
▲답=너무 엉겹결이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문=폭발 후 부엌에 가본 일이 있나?
▲답=응접실 문을 열고 부엌에 가니 고무타는 냄새 같은 것이 몹시났다. 현관 부근에서도 났다.
▲문=다음날 아침 청소할 때 쓰레기통에서 딱총 화약 껍질을 보았는가?
▲답=『부엌앞 쓰레기를 쓸어 내실뒤 쓰레기통에 버릴때 땅에 흩어진 빨간 종이 조각을 보았다.
▲문=그 수량은?
▲답=세 손가락으로 집을 정도였다.

<먹고 싶지 않고 잠이 와 죽겠다>수감된 김군
11일 새벽 마포 경찰서 유치장 독방에 수감된 김홍준 군 (15)은 잠이 오는 듯 『졸려 죽겠는데 추워 잠이 잘 오지 않는다』면서 범행 자백의 진부와 범행 동기에 대해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이날 유치인 아침 점호 때 잠깐 일어나 앉은 김 군과 수사관의 일문일답은 다음과 같다.
▲문=좀 잤는가?
▲답=자꾸 졸린다. 추워서 잠을 잘 수 없다.
▲문=아침밥은 먹었는가?
▲답=잘 먹히지 않아 조금 먹었다.
▲문=가족이 보고 싶지 않은가?
▲답=……….
▲문=범행 동기는?
▲답=장난으로……모르겠다.
▲문=먹고 싶은게 있는가?
▲답=없다. 잠이 와 죽겠다.

<확실한 증거 없이 미성년 구속>홍준 군 아버지, 10개항 들어 반박|홍준 군의 집
10일 밤 10시50분쯤 홍준 군의 아버지 김대의씨 (45·내외 문제 연구소 연구원)는 부인 민병숙씨 (41)와 함께 집에서 뉴스를 통해 아들이 구속됐다는 것을 알고 『예측한 대로다. 놀랄 것이 없다. 그러나 미성년자를 확실한 물증 없이 구속한 것은 어린 싹을 정치적 희생물로 만든 것』이라 말했다.
김씨는 아들의 구속 영장이 청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에 경찰 수사에 의문점이 많다는 내용의 10가지 항목의 반박 문을 제시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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