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도 의견 다르면 물러날 수 있는 게 민주주의"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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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기초연금 축소 결정에 반발해 논란 끝에 물러난 진영(63·사진)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퇴 닷새 만인 4일 처음 기자와 마주 앉아 입을 열었다. 이날 오전 그의 지역구(서울 용산) 사무실에서 1시간가량 이어진 대화에서다. 진 전 장관은 “일부 언론 보도대로 공약 축소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사임한 건 절대 아니다”라며 “내가 반대하는 안을 야당에 들고 가서 관철시킬 수 없다고 생각해 물러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대화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 같다. 사퇴 파동을 전후해 어떻게 지냈나.
“처음 며칠간 언론에서 하도 두들겨대 정신이 없었다. 사표가 수리된 뒤 지역구 사무실에 출근하며 국회에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언론에 워낙 맞다 보니) 이젠 맷집이 좀 생긴 것 같다.(웃음)”

-사퇴한 진짜 이유가 뭔가.
“거듭 말하지만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연계해 지급하겠다는 정부 결정을 장관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국민연금 가입자 100만 명이 탈퇴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 심각한 건 회사원 같은 강제 가입자들이 불만을 품게 된다는 거다. 이들은 탈퇴도 못 하니 정부에 불만을 품게 될 우려가 크다. 그러나 기초연금을 소득수준에 연계해 지급하면 이런 부작용이 없다. 재정도 5조원쯤 절약된다고 대한노인회에서 추산했다.”

-새누리당에선 ‘대선 당시부터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연계한다고 공약했고 진 전 장관도 그걸 알고 있었다’고 주장하는데.
“아니다. 대선 당시 공약은 현행 기초노령연금과 장애인연금을 기초연금화하고 국민연금과 통합 운영해 모든 세대가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한 거였다. ‘통합’이 공약이었지 ‘연계’는 공약이 아니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그런 입장이었나.
“대통령 생각도 통합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그래서 대선 당시 공약을 그렇게 만든 것 아닌가. 내가 장관이 된 뒤 입장을 바꿨다는 건 전혀 사실이 아니다.”

-장관이 된 뒤 복지부에서 이와 관련해 어떤 논의를 했나.
“이 문제를 놓고 복지부 관계자들과 두 달 내내 밤낮없이 회의를 했다. 결론은 한결같이 ‘국민연금과 연계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국민연금공단 직원들을 만났을 때 ‘하고 싶은 얘기가 뭐냐’고 했더니 모두 ‘국민연금을 지켜달라’고 하더라. 지난달 30일 장관 이임사에서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복지부) 여러분이 저한테 비난하고 손가락질한다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 뒤 ‘그런 사람 복지부에 한 명도 없습니다’란 직원들의 메시지를 여러 통 받았다.”

-그런데 왜 정부 최종 방침은 ‘연계’로 수정됐나.
“모르겠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아마 복지문제를 잘 몰랐던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당(새누리당)이 이렇게 나온 건 정말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정부의 연계안을 들고 김기현 정책위의장을 비롯해 여러 의원을 만났는데, 전부 ‘우리 당은 절대로 이 안(연계안)을 못 받는다’고 했다. 그래서 당은 내 입장을 이해해준 줄 믿었는데 돌연 ‘연계안으로 가야 한다’고 말을 뒤집더라. 당까지 이렇게 나오니 나로선 물러날 수밖에 없다고 결심하게 됐다.”

-그런 결심이 언론에 먼저 보도돼 논란이 커졌다.
“(정부의 연계 방침이 굳어진) 9월 초에 사퇴하겠다고 결심을 했다. 다만 중점과제였던 사우디아라비아 의료시스템 수출 협상이 9월 말로 잡혔기에 그 뒤에 사퇴를 발표키로 하고, 지난달 20일 출국했다. 그런데 내가 극소수 주변에 사퇴 의사를 얘기한 게 어떻게 흘러나갔는지 출장 기간 중 언론사 기자가 국회의 내 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보좌관이 당황해 ‘장관이 공약 축소 책임을 지고 물러날 가능성이 있다’고 잘못된 설명을 했다. 나는 정부의 수정안을 받아들일 수 없어 물러난다는 거였지 공약 축소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는 뜻은 전혀 아니었다. 보좌관의 잘못된 설명으로 오해가 생긴 거다. 내가 무슨 언론플레이를 한 건 전혀 아니다.“

-정부의 공약 수정이 장관직까지 던져야 할 사안인가.
“보통 사안이라면 장관은 정부 결정에 따라야 한다. 그러나 이건 다르다. 기초연금을 축소해 국민연금과 연계하는 방안을 야당에 들고가 설득해야 한다. 그런데 그 방안을 반대해온 내가 무슨 설득력을 갖겠나. 야당이 ‘왜 평소 주장과 다르냐’고 따지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나는 정부 측에 ‘장관을 그만두고 국회로 돌아가면 정부안에 따르겠다’고 얘기했다, 당원으로서 정부안을 따르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장관으로서 반대해온 사안인데 야당을 설득해 관철할 수는 없었다.”

-사퇴를 비난한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항의전화를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내가 물러나게 된 상황을 설명하려고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 한 명에게만 전화했다. 그러자 윤 부대표가 ‘이따 전화 드리겠다’면서 끊더라. 얼마 뒤 내가 당에 항의전화를 했다는 보도가 나오더라. 정말 답답했다.”

-이번 사태로 박근혜 대통령과 각을 세운 것처럼 됐다.
“나는 그분(박 대통령)에게 섭섭한 건 전혀 없다. 나에게 참 잘해주신 분이다. 과거에도 나는 세종시 수정안을 비롯해 몇몇 사안을 놓고 대통령과 의견이 다른 적이 있었지만 근본적인 갈등은 없었다. 대통령이 이번에 이런 결정(국민연금 연계안)을 내린 건 잘은 모르지만 보고를 잘못 받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지금은 대통령이 (내게) 섭섭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해를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퇴 전후로 대통령과 얘기를 나눴나.
“그건 내가 말할 게 못 되고 … .”

-청와대 측과 새누리당에선 “대통령을 배신했다. 대통령 리더십에 상처를 줬다”고 비판하는데.
“아무 이견 없이 일사불란하게만 간다면 그게 무슨 민주주의인가. 정부 내에서도 반대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그래도 불이익을 받지 않아야 한다. 복지부에서도 어떤 현안에 대해 ‘나는 의견이 다르다’며 결재를 거부한 간부가 있었다. 나는 그를 다른 보직으로 돌리고, 아무 불이익을 주지 않았다. 장관도 마찬가지다. 정책에 이견이 있으면 얘기할 수 있고, 그래도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사임할 수 있는 거다. 선진국에선 그런 사례가 얼마든지 있다. 그걸 두고 대통령의 리더십이 손상됐다고 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이견을 주장하다 물러나는 사람도 있어야 민주적인 정부로 국민이 봐주고 지지할 것이다.”

-지역구 주민들의 반응은 어땠나.
“주민들로부터 ‘장관을 지지한다. (누가 비판하더라도) 우리는 다르다’는 메시지를 수백 통 받았다. 벌써 사회가 그렇게 변한 것이다.”

-이번 사태로 정부의 불통 현상이 더 심화될 것이란 우려도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웃으며)나보다 기자가 더 잘 알 것 아닌가.”

-내년 6·4 지방선거에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할 생각은 있나
“전혀 생각 없다. 난 의원직에 충실할 것이다. 원래부터 지역구(용산) 의원으로 의정을 펼치는 게 소신이었다.”

-이번 사태 때문에 다음 번 총선에서 공천받기가 어려워질 수 있지 않을까.
“그걸 지금 걱정할 때가 아니고… 이젠 (공천문화도) 바뀔 것이다. 지난번 총선에서도 상향식 공천을 한다고 했다가 불발됐지만 이젠 그런 것(상향식)이 대세가 될 거다.”

강찬호 기자 stonco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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