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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제자는 필자>|<제 5화> 동양극장 시절 (18)|박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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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신무용 공연>
연전에 신문학 60년이니, 신연극 60년이니해서 제각기 조용한 잔치를 치른 일이 있다. 즉 신문화라는 것은 1910년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고 얻은 것이라 하겠다. 그중에서도 신무용의 연령은 잘 알수 없으나 제일 젊지 않은가 생각한다.
내가 알기에는 조택원이가 일본에 가서 그때 일본의 신무용의 선구자이던 석정막에게 사사하고 돌아왔고, 최○희 그는 그후에 역시 석정막에게서 춤 공부를 하고 돌아왔다. 그랬는데 뒤에 나온 최가 인기가 높았던 것은 아마 여자였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그는 토월회 무용부 책임자로도 있었다.
1936년인가 싶다. 조택원이가 무용 발표회를 하겠다고 동양극장에 날짜를 얻으러 왔다. 극장 지배인인 최 군과 조 군은 잘 아는 사이고 조 군과 나와는 죽마지우라 각별히 친한 사이였다. 그러나 극장 날짜를 달라는 데는 주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그런고 하니 극장을 단 하루라도 남에게 빌려준 예가 없는데다가 아는 터라 해서 하루저녁이라도 빌려주자니 연극으로 수입되는 돈만큼 집세를 받을 수도 없거니와 연극 손님이 끊어질 것이니 아예 거절을 했다.
그러나 하도 졸라대기에 낮 (주간)에만 쓰라고 했다. 그때는 「마치네」라는 주간 공연이 없을 때라 인심을 쓴 것이다. 조 군은 감지덕지 포스터를 찍는다, 초대권을 박는다, 부산을 떨었다.
조 군은 초대권을 두둑이 보내왔다. 그 전날 연극이 끝나자 극 단원들을 위로한다고 송죽원이라는 요리 집으로 갔다. 우리는 요리 집에 갈 적마다 극단 초대권을 가지고 가서 현관 보이로부터 사무실 각방 보이, 때로는 그날 밤 서비스가 좋은 기생에게까지 몇 장씩 나눠준다. 그러면 서비스가 달라지고 늘 외상 술이지만 술값이 좀 밀렸어도 잘 통과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날 밤에는 조 군이 준 초대권을 다 풀어 주었다.
이튿날 극장에는 현관 보이 최 군이 뉴·페이스의 서투른 기생 하나를 데리고 나까오리(중절모-소프트라는 것)에다 스프링·코트에 멋진 양복을 입고 2층 특별석에 기생과 나란히 점잖게 앉아 있었다. 현관 보이란 현관에서 안내하는 역할인데 손님을 보아서 방 배정도 해주고 손님의 꼴을 보고 외상 손님인가, 외상을 먹고도 잘 갚는 손님인지, 잘 안 갚는 손님인지를 구별해서 좋은 방 혹은 보통 방으로 배정해 준다.
그리고 외상 손님 또는 외상값 잘 안 갚는 손님은 아예 현관에서 『방이 없읍니다』하고 미소와 함께 거절해 버린다. 그리고 또 한가지 중요한 임무는 손님마다 단골 기생이 다 있는 것은 아니니까 대개 보이에게 『알아서 불러라』하고 일임하는 것이다. 그러면 사무실에서는 어느 방 손님은 어떠한 층이냐고 현관 보이에게 묻고 어느 누구가 좋겠느냐고 기생까지 지정을 의뢰한다. 그러니까 그 요리 집에 줄이 안 닿은 기생은 현관 보이에게 뇌물을 써가면서 저를 불러달라는 청탁을 한다.
그래서 몸뚱이도 선사해야 한다. 현관 보이에게는 손님이 쓸 돈 다 쓰고 나가면서 팁이라는 것을 특별히 주어야 한다. 그러니 이렇게 저렇게 돈이 생겨 기생의 선은 제가 먼저 보니 보이 중에서 수석일 뿐 아니라 돈도 상당히 모으는 것이다. 이런 현관 보이 최 군이 키가 훤칠하게 크고 외양도 훤한데다가 멋들어지게 차리고 기생을 대동하였으니 누가 보아도 백만장자 부럽지 않게 보였다.
개막 징이 울렸다. 당시 신극류파 공연 때 개막·폐막의 신호로 징을 울린 것은 일본에서 석정막의 무용 무대에서 쓴 것인데 우리 나라에서도 유행하였다. 물론 조택원 무용 발표회의 개막도 이 징을 사용했다.
아직 신무용에 대해서 일반의 흥미와 인식이 없을 때여서 동양극장의 아래 위층 1천여 석에 관객이라곤 몇십명 뿐이었다.
그런데다가 「빌로도」 검정 막으로만 세면을 가로막고 조택원이 혼자서 이 끝에서 다리를 번쩍, 저 끝으로 가서 두 팔을 번쩍 나비를 잡으려다 놓친 형국만 하고, 조명은 조 군을 따라다니며 동그라미만 왔다갔다하니 밤새 현관에서 잠을 못 잔 보이 최 군은 따분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코를 곯았다. 옆에 앉은 기생 아가씨가 참다못해 팔꿈치로 툭툭 쳤으나 코고는 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그러자 조 군이 나비를 잡다 이내 놓치고 불이 꺼지자 그래도 의례를 아는 관중은 박수를 쳐주었다. 이 소리에 깜짝 놀란 최 군은 벌떡 일어서며 『네-』하고 긴대답을 하자 객석에 불이 켜졌다.
비록 몇 안 되는 관객이지만 모두 그 최 군의 직업을 알게 되었고, 귀부인연하고 옆에 붙어 앉았던 기생 아가씨는 얼굴을 가리고 뛰어나갔다. 그 뒤를 쫓아나가는 최 군은 『특실로 가는 거야』하고 소리쳤다.
그날의 「쇼·스파트」는 조 군의 나비 잡이 보다 최 군의 편이 더 재미있었다. 사람의 직이란 이래서 탄로가 나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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