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의 정풍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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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구고법산하 일부 판사를 사이에 일기 시작한 사법부 정풍운동은 조야 법조인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얻어 전국적으로 퍼질 기세를 보이고 있다. 민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최고책임자로서 대구고법산하의 정풍운동을 매우 흐뭇하게 생각하며, 이 운동이 전국 법원에 자율적으로 파급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재야 법조인가운데도 이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한다.
맨 처음 이 운동을 주장하고 나선 대구고법 4명의 부장판사중 한사람인 최봉길씨는 이 운동을 벌이게 된 계기가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까지 한국의 법관은 뇌물에 민감하다느니, 세속화했다느니 하여 지탄을 받은데 자극을 받은 것』이라고 말하고, 『사회지탄의 대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숙하자는데 뜻을 같이하는 판사들이 힘을 모아 깨끗하고 믿음직한 사법부를 후세에 물려주자는데 이 운동의 참뜻이 있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 운동은 ①법관의 집무자세의 쇄신 ②권력으로부터의 독립 ③사건청탁 배제 등 3개「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는데 우리는 법조인의 자숙으로 「깨끗하고 믿음직한 사법부」를 후세에 물려주자는 운동이 사법부의 일각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것을 대단히 흡족하게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의 사법부가 일부의 비평처럼 썩고 있는가, 또 사법부의 독립이 보전되고 있는가는 보는 사람마다 견해를 달리할 줄 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법부가 일부측에서나마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있는 소이는 법관이 법관으로서의 양심적인 자세를 견지하지 못하고 권력으로부터의 압력이나, 청탁공세에 굴복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경우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법원 정풍운동의 핵심은 법에 의해서 재판하는 판사들이 권력으로부터의 압력이나 달콤한 금품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치고 재판관으로서의 의연한 자세를 지켜 나가는데 있다. 이상적인 판사는 성직자처럼 청렴한 인격을 갖고, 불필요한 교제나 오해를 살지도 모르는 대인접촉을 되도록 삼가야 한다.
다만, 이와 같은 이상형의 판사가 실사회에 존재하기 어렵다는 것은 판사 역시 인간이어서 혼탁한 세파에 휘말려들기 쉽기 때문이다. 이 까닭으로 우리는 법원 정풍운동의 전개를 판사들의 양심에만 기대할 것이 아니라, 판사들의 생활을 충분히 보장해주어 그들로 하여금 「뇌물에 민감」치 않고서도 살아 나갈 만한 조건을 만들어 주는데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요, 이점 반드시 국가적인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을 강조해 둔다.
재판은 판사와 검사와 변호사 등 재조·재야법조인들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실무적으로는 법원 서기과 직원에 의해서 진행되기 마련이다. 후진국부패현상에서 공통의 요인이라 지적되고있는 이른바 급행료(speed money) 문제가 법원 서기과와 무관한 것이 아님은 더 말할 것도 없기 때문에 판사들이 양심의 자세를 지켜 「깨끗하고 믿음직한 사법부」를 만들고자 노력한다하더라도 검찰이나 변호사뿐만 아니라, 모든 법원관계자의 적극적인 호응이 없다고 하면 법원 정풍운동은 결코 그 결실을 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점 앞으로 모든 법조관계자들로부터 반드시 전면적인 협조가 있기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소이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앞으로는 법원주변을 맴도는 소위사건 「브로커」들이 반드시 일소되어야 할 것은 물론, 판·검사가 피의자나 원·피고 혹은 그들의 가족으로부터 금품을 받는 일이라든지 또는 변호사가 청탁뇌물을 받아서 전달하는 등 타락한 중개인이 되는 사태는 단연코 근절되어야 할 것이다.
삼권분립제하 사법부는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라는 말을 듣는다. 이 말은 사법부가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그 독립을 고수하는 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앞날에는 광명이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법부 자체 안에서 모처럼 일기 시작된 자발적인 정풍운동이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어주기를 염원한다. 그리고 행정부 안에서도 이와 같은 자발적인 운동이 불원간에 전개되기를 아울러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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