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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날「자활에의 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불미스런 과거를 씻고 새 생활을 시작하려는 일념으로 거지들이 모여 고난을 이기고 겨우 자립의 틀을 잡은 일심 자활「농축 원」(서울 동대문구 면목2동 1031·원장 김춘삼)이 무허가 건물과 주택지 부근에선 가축을 기를 수 없다는 주민들의 진정으로 다시 안주할 땅을 잃을 위험에 놓여 있다.
중 랑 교 남쪽 중랑천 양쪽 둑 일대 10여만 평의 시유지에 김춘삼씨 일행이 무단 정착한 것은 63년 이른 봄. 당시만 해도 이곳은 논과 밭도 제대로 일궈 있지 않은 허허벌판이었다.
김씨는 사회 각계에서 모은 70여만 원을 들여 함께 구걸을 해 오던 거지들 35가구와 함께 닭·돼지 등 가축을 기르기 시작했다.
한마음으로 뭉쳐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살자는 뜻에서 일심 자활 농축 원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 동안 우리가 없어 두 평 남짓한 움막에서 가축과 기거를 같이하며 춘 설을 이기고 키운 중닭, 중병아리를 여름 장마에 움막과 함께 씻기 우고 는 다시 옛날의 구걸 생활로 되돌아간 사람들도 많았다.
또한 사육 기술이 전혀 없어 계절적으로 휩쓰는 가축 전염병에 대해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그러나 가축을 친자식처럼 아끼는 이들은 점차 사육 기술을 습득, 차차 생활의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이러한 일심자활 농축 원의 소문은 전국의 다리 밑과 산비탈의 거지 떼 소굴에도 빈틈없이 퍼졌다.
새 생활을 하고자 하는 거지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 지금은 약 4백 여 가구가 함께 모여 살고 있다.
현재 농축 원에서 기르는 닭은 약 17만 마리·오리 4만7천 마리·돼지 6백50마리이며 젖소가 35마리나 된다.
사람 수가 적을 때는 사료 구입이나 판매에 있어서 공동으로 했으나 이제는 4백여 가구의대 가족으로 늘어나 구입·판매를 각자 하고 있다.
이들의 월 평균 수입은 4만원 선. 이젠 진 빚도 갚고 조금씩은 저축도 시작했다.
그러나 잃었던 꿈을 되새기기 시작한 이들의 얼굴에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3, 4년 전부터 변두리 개발「붐」에 띠라 농축 원 부근에 들어선 주민들이 농축 원에서 기르는 가축에서 나는 악취와 질병이 번질 우려가 있으니 이곳 가축들을 딴 곳으로 옮겨 달라고 당국에 진정하고 있기 때문.
이들은 수시로 경찰에 불려 가 3∼5천 원씩의 벌금을 물고 나온 후부터는 불안에 떨고 있다.
원장 김씨는『이 4백 가구는 전국 70만 걸인의 주시를 받고 있다』고 말하고『이들에게 어떤 방법으로든지 생활의 기틀을 잡아 줘야 한다』고 힘주었다.
김씨는 또 이들의 생활이 여유가 생기면 걸인 자활 기금 같은 것을 만들어 자기 힘으로 살아보려는 걸인들을 도울 계획인데 가축들과 같이 이주할 땅이 없어 앞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채영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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