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김찬삼 여행기<미 영 사모아도서 제3신>|섬 경기 좌우하는 한국 선단 어획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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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 사모아 섬에서 우리 나라 어부며 선원들의 생활을 살피면서 문득 느낀 것은 이조 때의 시인 고산이 노래한「어부사시사」였다. 이렇듯 먼 이국에 와서 1년 내내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우리 어부들이야말로 현대의「어부사시사」속의 주인공이 아닐 수 없다. 이제 한국의 판도는 이렇게 달라졌다.
우리 나라는 지금 새로운 바다의 역사를 창조하고 있고 나 하는 뿌듯한 기쁨을 느꼈다. 선한 어씨(고기 님)에겐 좀 죄송스러운 일이지만 세계의 고기를 우리의 손으로 잡아야 할 것이 아닌가. 강태공 같은 곧은 낚시질은 한갓 옛이야기가 되었다. 우리의 어부들은 모두들 헤밍웨이의『노인과 바다』에 그려진 늙은 어부 같다. 몇 곱절 굳센 바다의 의지로 남태평양이 좁다하고 누비고 있다. 로저즈의『바다의 승리』보다 더 우렁찬 노래가 울려 퍼진다. 이곳「팡고팡고」수산부두에는 미국의 자본으로 된「스타·키스트」와「반·캡프」란 두 통조림 공장이 있다. 지금 우리 나라 어선은 57척과 19척으로 나뉘어 이 두 공장에 고기를 공급하고 있는데 풍어로써 만선으로 계속적으로 들어올 때에는 공장에서는 24시간을 가동한다. 이런 때에는 저 게오르규의 소설인『25시』처럼 구원의 시간인 한시간이 더 없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러나 고기가 적게 입항하면 공장이 거의 쉬게되며 특히 원주민인 고용자들의 수입이 적어진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 어부에 대한 애칭인「미스터·코리언」과 한국어선단은 이 사모아 사람의 생사를 좌우하다시피 하니 그들과 우리는 운명공동체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여기서는 우리 어부들을 괄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유중국의 어선도 많이 와 있긴 하나 이들은 워낙 만만디의 대륙적인 기질이 있어 우리 나라의 활동이 지배적이라고 한다. 사모아 어장을 개척한 것은 일본어선이지만 요즘은 거의 물러났다고 한다.
그 대신 일본인은 편히 돈을 벌기 위하여 여기서 잡은 고기를 냉동하여 유럽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데다가 중국어선과 한국어선의 출어에 필요한 낚시도구며 갑판작업 비품·식료품들의 조달로써 이젠 가만히 앉아서 한몫보고 있다고 한다.
출어에 필요한 이런 필수품은 마땅히 우리 나라 제품을 써야할 것이 아니냐고 했더니 겉보기는 좋으나 품질이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우리 나라 수출품은 견본보다 실제의 상품이 나쁘다는 말들을 들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 나라 업자들은 어떻게 되었기에 이런 일을 하는가 하고 분개하게되고 얼굴을 붉히곤 했는데 이 사모아에서도 우리 나라 물건은 겉만 번지르르 할뿐 질이 좋지 않다고 하니 서운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 사모아 어장의 우리의 전망은 밝다. 미국의 통조림 공장이 1년 내내 24시간 가동할 수 있는 고기를 잡아들여 올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적어도 3, 4백t 급의 신 조선을 더 늘리고 어부들을 더 많이 파견함으로써 안전성 있는 어획고를 올릴 수 있게 하되, 출어에 필요한 조달 품은 우리의 것을 쓰도록 좀더 양심적으로 만들어서 보내주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앞의 이해관계에만 급급하지 맡고 긴 안목으로 앞을 내다보아야 할 것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하루 이틀에 갑자기 기술을 익히기는 어려울지 모르나 거북선을 만든 그 손으로 조선 술을 발전시켜 우리가 만든 어선으로 세계의 대양으로 나가는 일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이 기지에 공장을 만들고 손수 잡은 귀한 고기를 냉동 시켜서 유럽 시장에 보낼 수도 있지 않은가.
이곳에 우리 나라의 많은 인사들이 들렀던 모양인데 앞으로 원양어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나 또는 정부 당국자가 오거들랑 수박 겉 핥기인 브리핑 식으로 살펴본 것이 아니라 작용 복을 입고 어부들과 함께 나가서 생활을 같이 해보아야 현지의 사정도 제대로 알뿐더러 개선할 점을 뼈저리게 발견하리라고 본다. 내가 머물러 있는 동안 한국 원양훈련소에서 두 척의 배가 실습을 겸해서 어장 조사를 하고있는데 매우 기쁜 일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기지를 둔 여덟 개의 회사가 만든 한국원양어업협회 는 한글로 된 갑판이 붙어 있는데 매우 반가 왔으며 더구나 이 안에 있는 공작 소·진료소에는 여러 계통의 기술자가 있어서 선박 수리뿐만 아니라 이곳 기지에서 쓰는 자동차 손질까지도 잘한다고 하니 재질 좋은 우리 나라 사람의 긍지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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