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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전투기 절반 30년 넘게 노후 … 하늘 안보 공백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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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차기 전투기 선정을 위한 방위사업추진위원회 회의가 24일 서울 용산 국방부 중회의실에서 열렸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회의 시작을 알리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이날 회의에 상정된 보잉의 F-15SE 선정 안건은 부결됐다. [사진공동취재단]

24일 차기 전투기(F-X) 기종 선정을 위한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마치고 나온 김관진 국방부 장관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내가 회의 참석자들에게 오늘 회의와 관련해선 한마디도 하지 말라고 지시했는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며 말을 아꼈다.

  이날 회의는 당초 24명의 위원이 의견을 개진한 뒤 투표로 결정하려던 계획을 바꿔 F-15SE 부결에 동의하는지를 묻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위원회 관계자는 “김 장관이 회의장에 들어올 때부터 부결을 결심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지난달 16일 끝난 가격입찰에서 F-15SE를 제작하는 보잉이 유일하게 가격 조건(8조3000억원)을 충족시키면서 기종 선정은 순탄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한호 예비역 대장을 비롯한 역대 공군총장 15명이 지난 12일 박 대통령과 김 장관, 국회 국방위원 앞으로 스텔스 전투기 구매를 강력히 요구하는 건의문을 보내면서 반전의 분위기가 감지됐다. 지난 13일 김 장관이 박 대통령에게 기종 선정에 대해 보고하자 박 대통령은 “김 장관이 잘 알아 판단하시라”며 결정을 위임했다고 한다. 이후 추석 연휴를 전후해 “김 장관이 사업 재검토를 결심했고 전력 공백을 막기 위한 방안을 강구해 보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소문이 국방부 주변에 돌았다.

 이번 결정은 F-15SE에 대한 반대여론을 계기로 스텔스기인 록히드마틴의 F-35A에 다시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록히드마틴의 F-35A는 미국 정부가 예산을 투입, 개발해 정부 간 거래(FMS) 방식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국방부가 한·미 군사동맹 관계를 의식해 이런 결정을 내렸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방부는 “북한 핵 등 최근 한반도 분위기를 고려한 어쩔 수 없는 결단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F-15SE의 채택이 무산됨에 따라 고성능 전투기를 2017년부터 전력화하려던 계획의 연기가 불가피해졌다. 기종 선정사업을 추진하는 데 1~2년이 소요되는 만큼 공군의 전력 공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공군은 현재 430여 대의 전투기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여온 F-15K(60대)와 1980년대부터 도입해 온 F-16·KF-16(100여 대)을 제외하면 절반 이상이 이미 운영 연한인 30년을 훨씬 넘은 상태다. 공군 관계자는 “70년대 들여온 전투기를 1~2년 더 쓸 수는 있지만 부품 부족과 안전성을 고려하면 비행 횟수를 줄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 신인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F-X 1차 사업 때도 종합평가 1위였던 프랑스 라팔을 배제하고 F-15K를 선택한 데 이어 이번에도 1위인 F-35A를 배제했다가 F-15SE를 부결시켜 결과적으로 국제 방산시장에서 신인도를 떨어뜨렸다.

 이 과정에서 국방부와 방사청이 불협화음을 노출했다. 국방부 관계자들은 사업 추진 과정에서 예산을 증액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으나 방사청은 ‘예산 증액 불가’ 입장을 고수해 갈등을 벌였다. 국방부가 이용대 전력자원관리실장을 태스크포스(TF)팀장으로 임명해 F-X사업 재추진 방식을 지휘하게 한 것도 방사청에 대한 불편한 기류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국방부는 사업을 재추진하는 과정에서 8조3000억원의 총사업비를 1조~1조5000억원가량 증액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복지재원에 압박을 받는 기획재정부가 받아들일지도 미지수다.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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