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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아저씨… 아빠 친 운전사를 잡아주세요"|서강교 배금순 양 청와대에 편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고마우신 대통령 아저써! 저는 서울 서강 국민학교 1학년 3반에 다니는 배금순입니다. 우리 아빠를 치어서 길 밖으로 버리고 도망쳐 죽게 한 나쁜 운전사를 꼭 잡아서 불쌍한 우리 아빠를 편히 잠들도록 해 주셔요. 그래서 나도 언니도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해 주셔요.』 뺑소니 차에 아빠를 빼앗긴 금순양(7)은 국어 공책에 연필로 또박또박 눌러 쓴 간절한 소원을 청와대에 써 보냈다.
금순양의 아버지 배주걸씨(40·서울 마포구 창전동 산2 15통4반)는 지난 10월27일 밤 서울 영등포구 동작동 경부고속도로 입구에서 번호와 종류를 알 수 없는 차에 치었다.
운전사는 머리를 다쳐 중상을 입은 배씨를 버려두고 달아나 버렸다. 밤 사이에 내린 비를 흠씬 맞은 배씨는 추위와 아픔 때문애 신음했으나 아무도 돌봐주지 않았다.
배씨는 이튿날 아침 행인에 의해 발견되어 겨우 성모병원에 옮겼으나 곧 숨졌다.
소식을 듣고 달려간 무인 김정자씨(37)와 금순양은 아빠의 시체를 부둥켜 안고 몸부림쳤다.
배씨의 고향은 경북 안동군 길안면. 논 한마지기 없이 날품팔이를 하던 배씨 내외는 5남매를 이끌고 지난해 3월 서울로 왔다. 배씨는 칠성 사이다 공장에 잡역부로 취직, 1만2천원의 월급을 받았다.
맏아들 선모군(17)과 둘째아들 선관군(14)이 이발소에 취직하여 하루에 1백40원씩 벌어들였다.
사고가 났던 날 밤 배씨는 말죽거레에 잇는 공장에서 늦게 일을 마치고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배씨가 물려준 재산은 어린5남매에 8만원짜리 전세방, 그리고 현금 4백원 뿐. 하루아침에 기둥을 잃어버린 금순양 집에는 슬픔과 가난만이 남았다.
회사에서 보태준 4만7천원으로 치료비와 시체 해부비용 4만원을 물고 빚을 얻어 겨우 장사를 치럿다.
겨울이 깊어 추워만 지는데 금순 양 집에는 쌀과 연탄이 떨어졌다. 남편이 죽은 후 몸져 누워있던 김씨는 어린 자식을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해야했다. 동네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스웨터 공장에서 일거리를 얻어왔다. 편물기로 짠 스웨터 앞뒤판을 실로 꿰메주면 1개에 1원씩 받는다.
금순양까지 도와 하루종일 열심히 손을 놀리지만 40개를 넘기지 못한다.
금순양은 아빠를 앗아간 얼굴도 모르는 운전사 아저씨가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금순양은 『세계에서 제일 나쁜 아저씨』를 잡아달라고 고사리 손으로 청와대에 편지를 쓴 것. 금순양의 호소문을 받은 박 대통령은 금순양의 아버지를 치어 죽인 나쁜 운전사를 하루빨리 잡아서 또 다른 금순양이 태어나지 않도록 하라고 관계기관에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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