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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 형만 한 아우 없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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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한동안 아우가 형을 앞지르던 펀드시장에 ‘선수 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유럽 등 선진국 경기가 살아나면서 대형주 펀드가 다시 살아나는 반면 지난 몇 년간 높은 수익률로 인기몰이를 하던 중소형주 펀드는 주춤한 모습이다.

 지난 17일 기준 중소형주 펀드의 최근 1개월 평균 수익률은 0.88%다. 반면 일반주식형 펀드와 코스피200인덱스 펀드 수익률은 각각 3.71%, 6.24%를 기록했다. 1년 수익률로 따졌을 때 중소형주 펀드는 9.18%로, 일반주식형 펀드와 코스피200인덱스 펀드가 각각 0.21%, 0.46%인 것과 대조적이다. 일반주식형 펀드 중 가장 성과가 좋은 펀드 역시 프랭클린템플턴그로스, KB삼성&현대차그룹플러스 같은 대형·성장주 펀드들이다. 이 두 펀드는 지난 한 달간 7% 넘는 수익률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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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후정 동양증권 연구원은 “코스피지수가 2000 부근까지 오르면서 환매 수요가 급증해 대형주·중소형주에서 고르게 자금이 빠졌다”며 “그런 와중에도 대형주 펀드는 좋은 성적을 거뒀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대형주 펀드 수익의 일등 공신은 외국인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주로 인덱스 펀드 등을 통해 시가총액 상위 업종에 투자하는 패턴을 보인다. 외국인이 코스피에서 19거래일 연속 순매수 행진을 벌이면서 대형주가 가장 큰 수혜를 본 셈이다. 실제로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가 지난 한 달간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은 삼성전자·포스코 같은 대형주였다.

 조선·건설처럼 한동안 부진을 면치 못하던 업종도 최근 한 달간 15% 넘게 오르며 대형주 상승에 힘을 보태고 있다. 글로벌 경기가 회복되면서 선박 수주량이 는 대우조선해양은 연일 신고가를 경신 중이다. GS건설·대우건설 같은 건설주도 한 달 새 20% 이상 상승했다. 해외 건설 프로젝트 수주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도 대형주 상승세가 지속될지 여부다. 증권업계에선 “그렇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지난 2년간 저점에 머물렀던 만큼 글로벌 경기 회복 기조가 지속되는 당분간은 대형주를 눈여겨봐야 한다는 얘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양적완화 축소 연기를 결정하면서 이 같은 전망이 더 우세해졌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투자전략팀 상무는 “외국 자금 유입이 연말까지 이어질 것이다. 대형 수출주도 추가 상승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김후정 동양증권 연구원도 “IT·운송업종 대형주 위주로 투자해볼 만하다”고 봤다.

 물론 반론도 있다. 이해정 이트레이드증권 연구원은 “실적 시즌이 다가오면 자기자본이익률(ROE)이 상승한 종목을 중심으로 중소형주가 다시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오광영 신영증권 연구원은 “대형주 펀드와 중소형주 펀드 비중을 6 대 4 정도로 가져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펀드를 실제 운용하는 펀드매니저들 사이에선 두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는 양상이다. 국내 대표 가치주 펀드인 신영밸류고배당 펀드와 KB밸류포커스 펀드의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본부장과 최웅필 KB자산운용 이사는 정반대의 전망을 내놓았다. 허 본부장은 “최근 3개월간 대형주 비중을 5%가량 늘렸다. 지금은 대형주를 담을 때”라고 말한 반면 최 이사는 “대형주가 더 오르려면 당장 3분기 실적이 호전돼야 하는데 현재로선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홍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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