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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려시대 '도방'에서 시작된 한국 조폭의 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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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조폭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전문가들은 한국 조폭의 뿌리를 고려시대에서부터 찾고 있다. 고려 중기 정권을 잡은 정중부에 대항했던 경대승이 조직한 ‘도방’이 대표적이다(1179년).

이 도방이 당시 수도였던 개경의 건달패들을 모아 테러를 가하고 양민들을 괴롭혔던 조폭이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조폭은 세조때의 홍윤성이 대표적이다. 홍윤성은 당시 한양의 건달패 우두머리로 책사 한명회와 함께 계유정난(1453년) 당시 세조가 정권을 찬탈하는데 앞장섰다. 구한말의 보부상 조직도 일종의 조폭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대원군이 조직한 건달패 ‘천하장안’(천희연·하정일·장순규·안필주 등 네명의 건달의 성을 딴 이름)은 구한말의 대표적인 조폭이다. 조폭은 역사적 기원에서부터 정치권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 고려·조선조의 ‘조폭’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조폭과는 거리가 멀다. 근대적인 의미의 조폭은 일본의 낭인과 야쿠자들이 한양에 진입하면서부터 형성됐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김두한과 대결했던 야쿠자 하야시다. 하야시의 원래 이름은 선우용빈으로 인천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건너간 뒤 야쿠자가 됐다고 한다. 그를 조선으로 보내 인물도 황해도 출신의 한국계 야쿠자 거물인 두산만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경찰대학에서 공부하고 도쿄도립대에서 ‘한·일 범죄조직의 실태와 법적 대응에 관한 비교’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서대문 경찰서 박건찬 경정은 “일본의 야쿠자는 봉건시대의 바쿠토(博徒), 데키야(的屋), 구렌타이(愚連隊)라는 역사적 뿌리를 갖고 있음에 비해 한국 조폭은 뿌리가 없다”고 지적한다. 바쿠토는 일본 중세시대의 전문 노름꾼, 데키야는 보부상과 같은 떠돌이 행상집단, 구렌타이는 2차대전이후 등장한 청소년 폭력조직을 의미한다.

야쿠자(YAKUZA)라는 용어는 도박에서 가장 불리한 패를 뜻하는 것으로 ‘쓸모없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가 폭력배를 지칭하는 용어로 자리잡았다. 18세기의 바쿠토와 데키야에 역사적 기원을 두고 있으며 구렌타이 조직이 합쳐지면서 오늘날 같은 조직형태를 갖추게 됐다고 한다.

미국의 마피아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의 비밀 애국결사에서 출발했고, 중국의 삼합회는 청왕조를 도와 외세의 침략에 저항했던 소림사 무승이 원조로 알려져 있다.

조폭은 깡패, 건달(乾達), 불한당(不汗黨), 가다(어깨를 뜻하는 일본어), 파락호(破落戶), 한량(閑良)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6·25 이전에는 ‘주먹·가다·야쿠자·어깨’ 등이 널리 쓰였고, 불한당이나 파락호·한량 등은 근대이전에 주로 쓰였다. 6·25 이후 가장 널리 쓰인 말은 ‘깡패’로 이 말은 6·25 이후 동두천 일대 미군부대 주변의 구두닦이 소년들이 영어의 ‘gang’에다 패거리를 뜻하는 패(牌)자를 합해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깡패라는 말이 공식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57년 5월의 폭력배에 의한 야당 집회방해사건을 당시 언론이 보도하면서 ‘정치깡패’라는 용어를 쓴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건달은 사전적 의미로는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놀거나 게으름을 부리는 짓”을 뜻하나 원래의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면 하늘(乾)에 통달(達)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범어의 간다르바(乾達婆)에서 유래된 용어다. 건달은 60년대 이후부터 널리 쓰였다고 한다. 80년대 이후로는 조직폭력배라는 말이 등장하여 이 말의 줄임말인 ‘조폭’(組暴)이 거의 정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회언어학자인 김하수 연세대 교수는 “건달이나 한량이라는 용어는 조직이 아닌 개별이라는 뜻이 더 강하다. 조폭이라는 말은 조직적인 의미가 더 강조되어 있기 때문에 산업사회에 대응하는 말”이라고 분석했다.

박건찬 경정은 한국 조폭의 역사를 해방이전의 태동기, 해방이후 6·25 이전까지의 조직화시기, 50년대 최전성기, 60∼70년대 쇠퇴와 세력재편기, 80년대 제2의 전성기, 90년대 이후 재편기, 국제화 시기 등으로 구분한다.

해방이전의 식민지 시기는 한국 조폭의 태동기로 대표적인 인물은 종로파를 이끌었던 김두한이다. SBS의 드라마 ‘야인시대’는 이 시기를 배경으로 했는데 드라마에는 사실과 다른 픽션의 요소가 상당히 많이 개입되었다.

[출처=뉴스위크 549호/ 김재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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