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사와 여인과 노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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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폐쇄적이며 계급의식이 강한 봉건적인 사회로부터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사회로 전향하면서 우리 나라의 「양반」 「상민」과 같은 개념도 이젠 한낱 옛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언어생활에서도 물질문명의 발달을 반영하는 다양성과 더불어 또 한편에는 다분히 민주화의 경향도 엿보이고 있다. 그러나 사람의 이름 아래 쓰이는 칭호에 있어서는 그 민주화도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못한 듯, 우선 일간신문들의 3면 기사를 보아보자.
남성들의 경우는 대체로 「씨」의 유무로 그 이름이 영예로운 것인지, 그렇지 못한 것인지를 짐작할 수가 있게 되어 있으나, 여성들의 경우에는 때때로 눈에 띄는 「씨」외에 또 다른 세 가지 칭호들이 흔히 쓰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대학교 총장 이××여사」 혹은 「김××장관의 부인 송××여사」등의 「여사」가 있고, 「포목상 양××여인 실종」혹은 「피의자의 처 김××여인」등의 「여인이 있고, 또 「옛 독립지사의 유족 윤××노파 생활고에…」 「길 가던 이××노파 택시에…」등의 「노파」가 있다.
이들을 잠시 살펴보면, 「여사」는 본인이나 본인의 배경이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하고 있는 경우라야 하는 듯 하고, 「노파」는 우선 나이가 꽤 되고 그러나 그다지 화려하진 못한 처지에 있는 여성이라야 하는 듯 하며, 「여인」은 위 두 범주의 어는 것에도 들어맞지 않는 평범한 무명인이거나 혹은 범죄와 관련이 있는 경우에 쓰이는 것 같다.(「아내」를 표시 나는 데에도 「여사」급은 「부인」이라 일컬어지며 「여인」급은 「처」로 불린다.)
이러고 보면, <소나기를 그리는 너는 정열의 여인>이라 읊은 김동오 시인의 「파초」나 <눈 여겨 낯익은 듯한 여인하나>의 뒷모습에 옛 추억을 더듬는 한하운 시인의 『여인』이 풍겨주던 아름다운 「뉴앙스」와는 무척도 거리가 먼 차가운 현실만이 「클로스업」이 된다. 보다 밝은 내 고장을 이룩하기 위해 한 평생을 공지사업을 위해 바쳐 온 여류인사는 물론 크게 치하 받아 마땅하건만, 그렇다고 아들 딸 모조리 나라와 비운을 같이하고 그래도 깨끗이 살아보려고 허덕여 온 또 하나의 갸륵한 60평생이 꼭 「노파」이라야만 할까? 70세 고령의 할머니라도 「김××장관의 모친 이××노파」라고는 안 하지 않던가?
문득, 나는 여느 때의 보다 한가하고 보다 여성적(?)인 생활에 대한 안타까운 동경을 버려도 좋겠다는 충동을 느낀다.
나도 나이 예순쯤 되면 흘러간 시문을 뒤로 주름살만 늘었을 때 (「부인」으로서의 행세가 아니었던 들) 「여사」란 깨끗한 8획 글자 대신에 주름잡힌 17휙 글자의 「노파」가 될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노」라는 「늙」수구레한 소리와 「파」라는 「파」열음이 귀에도 몹시 거칠다.
이젠 상하의 계급의식이나 존경이며 천시의 인정이 표면화하지 않을 수 있는 중립적인 보도용의 칭호가 모색되어져야 할때가 아닌가 싶다. 【박순함<외대교교·회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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