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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흥겨운 민속의 가락 농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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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 민족고유의 종합예술제전인 제1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전북을 대표하여 출전한 농악「팀」은 또 영예의 대통령상을 차지했다. 66년도의 이 대회에서 지방의 노련한 풍물잡이들로 한 팀을 구성해 최고상을 획득한 바 있는 전북농악은 이번엔 나이 어린 고교생 팀으로서 금년도 경연대회의 벅찬 영광을 독차지한 것이다.
농악은 우리 민족 피 살 속에 배어 있는 가장 대중적인 가락이요, 율동이며 흥취인 까닭에 방방곡곡의 어느 마을을 가도 이를 모르는 이 있으랴만, 그 전승에는 다소 「갭」이 생겨있다. 시체 젊은이들이 자칫 외면하는 경향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부흥 위해 52년 악대발족>
이번 전북 농악「팀」을 구성한 20명의 학생은 모두 전주농고 재학생이다. 농악반은 A·B 2개조로 1학년이 25명, 2학년이 6명, 3학년이 7명, 그리고 졸업생이 2명 등 모두 40명인데 이번 출전은 A조가 했다.
농촌 출신의 이 학생들은 누가 뭐라해도 농민의 환락과 단결과 근로가 오직 농악의 부흥으로만 가능하다는 자신을 갖고 있다. 그것은 바로 어느 학교보다도 먼저 학생농악대를 발족시킨 전주농고의 이상이며 취지이기도 하다. 첫 발족은 1952년. 이 학생 「팀」은 지난 6년 동안 계속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여 이목을 모아왔고 67·68·69년의 연 3년 문공부 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그 성과로 이미 농촌에서 농악의 선봉장이 되어 활약하고 있는 많은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 예산마저 부족한 불우한 역경 속에서 한참 뛰고 돌고 나면 창자는 주리고 현깃증이 남에도 냉수를 간식 삼아 학업에 쫓기는 시간 밤을 새워가며 연습하고 있습니다. 이 희생적 노고를 뉘 알리오마는 우리들 앳된 이 어린 농악대는 필경 국가의 발전에 기여하는 민족예술의 한 역군으로서 영원히 빛나는 보람을 되찾고자 맹세합니다』-수년전 이 대회 출전 인사장의 한 귀절이다.

<지도 맡은 영어교사 대가돼>
이 학생 농악대의 지도교사는 영어교사인 이기주씨(49). 초창기엔 밖에서 강사를 초빙해 가르쳤지만, 이제는 이 교사 자신이 모든 농악기를 다 다룰 줄 아는 대가를 이루었다. 농악선생으로 통하는 그는 타고난 일을 하고있다고 할까, 17년간의 집념 끝에 이제는 문헌과 이론을 연구해 더욱 발전시켜보겠다는 희망으로 가슴 부풀어있다.
더구나 금년에 도 교육위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얻어 어엿하게 장비를 갖추어 놓았으며, 이번 상금 1백만원은 자동적으로 사단법인체를 창설하는 기금이 되지 않겠는가.
지난 반세기동안 이지러지고 혹은 단절된 민속예술을 되살려내 부흥시키는데는 그런 숨은 인재가 절실히 요구된다. 작년에 대통령상을 탄 전남광산의 고싸움놀이에도 전남대의 지춘상·홍순탁 두 교수의 숨은 노고가 서려있었다. 그들은 두달이나 농민들과 침식을 같이하며 실연을 꾀했고 또 그들 자신 각기 「줄패장」으로 분장하고 대회장까지 나섰다.

<규모 커지고 참여도 높아져>
따지고 보면 이 대회 때마다 나오는 모든 종목에는 거의 맹목적으로 노력하는 일꾼이 한둘씩 배후에 서있음을 알 수 있다. 근래에 이르러 민속예술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높아지고 또 대회의 규모도 날로 커가는 형편이지 5, 6년 전 만해도 사정은 영 달랐다. 덕수궁 마당을 빌어 잠시 풍장을 울리고 탈춤을 몇 과장 추는 것으로 연례행사는 으례 끝나 버렸다. 그 속에서 번번이 출전한다는 것은 한 도를 대표하기보다 한 개인의 고집스런 집념의 소산이었다.
금년 대회에는 예년에 없던 새로운 종목이 여럿 소개되었다. 또 각지방이 다 있는 줄다리기라 하더라도 장흥의 보름줄다리기는 부락민이 온통 쏟아져 나와 너무도 생생한 실전을 벌이는 바람에 온 관중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이런 때 장흥의 줄다리기는 어느 종목보다도 새로운 감흥을 주는 것이다.
발굴작업이 의욕적이라서 이제 우리 나라의 민속놀이·가면극·민속무용 등은 결코 빈약하지 않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한때 학생들의 경연장처럼 돼가던 이 대회장은 점차 햇빛에 그을리고 주름이 그득한 농군들의 경연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들 자신 민속예술이 얼마나 흥취 있고 실감 있는 것인가를 새삼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비록 학생들에 의하여 재생되고 있더라도 서민의 분위기만은 그대로 간직해야 한다는 점을 통감하고 있는 것 같다.

<실내·옥외놀이 구분될 듯>
다만 안동 차전놀이와 광산 고싸움놀이 등 규모 큰 민속적인 스포츠가 최고상을 거듭 차지함에 따라 출전경향도 다분히 그런데로 기울어지고 있다.
반면에 민속놀이가 자칫 「쇼」처럼 돼버릴 위험성까지 내포하고 있으며 또 한편으론 자그마한 무대에서나 보여줄 수 있는 것에 대해선 소홀해지는 감이 있다. 그래서 어느 시기에는 운동장에서 벌이는 종목과, 실내 무대가 알 맞는 민요·탈춤·놀이 등과는 별개의 대회장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는 제의가 이구동성이다.
음악성이 풍부한 호남의 농악이다. 다른 지방처럼 잡희자를 여럿 따르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쇠의 가락에 치중하고 장구와 소고의 율동으로 흥을 돋우는 이곳 농악이다. 특히 4명의 설장구는 일사불란의 묘기를 보여 이 잔치의 절정을 장식하곤 한다. 『쾌괭 쾌괭 쾡 쾡…』흥겨운 농악소리에는 절로 고갯장단이 끄덕이게 마련이다.
[글 이종석 기자]
[사진 최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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