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 참사] "안전교육장으로 남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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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대구시민 여러분, '이 날'을 잊지 맙시다."

대구지하철 참사 사건 현장인 중앙로역 안의 시커먼 벽면에 한 시민이 어른 주먹 크기 만한 글씨로 써 놓은 격문이다.

화마(火魔)가 할퀴고 간 자취가 생생히 남아있는 중앙로역을 우리나라 '대형 참사 시리즈'의 종착역이 될 수 있도록 복구하는 대신 살아있는 안전교육장으로 남기자는 시민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 등 잊을 만하면 다시 터져나오는 대형 참사들이 우리 자신의 '안전 건망증'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아픈 지적도 함께 나온다.

대구참사 4일째인 지난 21일 독자 이정태씨는 중앙일보에 '현장을 보존해 두고두고 아픈 마음과 대형 사고에 대한 두려움을 잃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e-메일을 보내왔다.

중앙로역 곳곳에 쌓여 있는 추모 국화꽃들 사이로 '쏟아지는 이 눈물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저 불길의 잔해들을 씻어내지 말아야 한다'는 메모도 자주 보인다.

중앙로역을 일본 히로시마의 원폭 투하지점이나 미국 뉴욕의 9.11테러 사건의 제로그라운드처럼 교훈의 장소로 삼자는 네티즌들의 의견도 활발하다.

이번 사고의 유가족대책위 사이트에는 25일 "이제 정말 더 이상 이런 일이 없도록 현장을 그대로 두어야 한다"(ID 양승관)는 주장이 올라왔다.

"전적으로 찬성한다", "불과 몇달이 지나면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는 또 새로운 참사를 맞을 것"(ID 찬성합니다)이라는 내용을 비롯해 이 주장에 공감한다는 글도 여러 건 올려졌다.

지난 24일에는 "중앙로역을 역사관으로 남겨 거울로 삼아야 한다"(ID 정해진)는 의견이 나오자 "벽의 그을음, 녹아내린 흉물들까지 부끄럽지만 없애지 말아야 한다"(ID 명복을 빕니다)는 등의 찬성 의견들이 잇따랐다.

25일 대구시 홈페이지에도 이번 사고로 사촌형을 잃었다는 김종근(경북 김천시)씨가 "중앙로역을 불에 탄 형태 그대로 남기고 사철 국화꽃을 바칠 수 있는 장소로 삼자"는 제안을 올렸다.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의 이규원 실장은 "어려서부터 안전문화를 체득할 수 있도록 살아있는 교육장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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