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정부 출범] 취임사에 담긴 국정방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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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대통령은 25일 취임사에서 "한반도가 21세기 동북아 시대의 중심이 되는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자"는 대목에서 가장 톤을 높였다.

한반도가 세계 평화의 발신지(發信地), 동북아 물류.금융의 중심지, 유라시아~태평양의 관문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盧대통령은 "진정한 동북아 시대를 열자면 먼저 한반도에 평화가 제도적으로 정착돼야 한다"고 풀어갔다. 최근 북한 핵과 미사일 발사 등의 현안을 매듭짓지 않고는 '동북아 중심국가'의 비전은 어렵다는 게 盧대통령의 판단이라고 핵심 참모는 전했다.

이런 맥락에서 盧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면 우리와 국제사회는 북한이 원하는 많은 것을 제공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인수위 외교통일안보분과 측은 "북한이 핵.미사일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면 문제해결 단계에 맞춰 대규모 대북 경제협력 조치를 단행하겠다는 의미"라고 이를 설명했다.

또 "북핵문제 해결시에는 대규모 대북지원 및 경협사업 추진과 함께 국제적 지원.협력 체제도 구축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盧대통령은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대신하는 새 정부의 '평화번영정책'도 새로이 제시했다. 모든 현안은 대화로 풀고, 상호신뢰와 호혜주의를 실천하며, 남북 당사자 원칙에 기초해 원활한 국제협력을 추구하며, 대내외적 투명성과 국민참여를 확대해 초당적 협력을 얻겠다는 게 '평화번영정책'의 네가지 원칙이다.

특히 盧대통령은 "그간 (대북)정책 추진과정에서 더욱 광범위한 국민적 합의를 얻어야 한다는 과제를 남겼다"며 최근의 대북 비밀송금 사건의 교훈을 되새겼다.

구체적으론 여야 및 국회와의 협력을 제도화하고 대북접촉 과정의 투명성을 강화하면서 정책수립.집행과정에 전문가.비정부기구(NGO)의 참여 확대를 구상하고 있다는게 청와대 측의 설명이다.

햇볕정책이 대 북한 정책에만 국한된 측면이 있다면 盧대통령의 이런 '평화번영정책'은 한반도 전체의 평화.번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청와대 측은 설명했다.

윤영관(尹永寬) 인수위 간사는 "북한의 핵.미사일.경제위기 문제는 단순히 한국만의 관심사항을 넘어서 국제화되고 있다"며 "새 정부의 대북정책은 기존의 남북관계 수준을 넘어 동북아 속의 한반도라는 지역전반의 차원에서 한 단계 진전된 정책으로 운용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盧대통령은 "동북아시대와 한반도 평화번영을 위해선 우리 사회가 건강해야 한다"며 내치(內治)의 큰 방향도 내놓았다. 그 골간이 될 새 정부 운영의 4대 좌표로 ▶원칙과 신뢰 ▶공정과 투명 ▶대화와 타협 ▶분권과 자율을 제시했다.

盧대통령은 "부정부패를 없애기 위해선 특히 사회지도층의 뼈를 깎는 성찰을 요망한다"고 권력형 비리에 엄중 경고를 했다.

또한 "국민 통합은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숙제"라며 "지역탕평 인사로 지역구도를 완화하겠다"고 약속했다. 대선 당시 盧대통령은 김대중 정부의 가장 잘못된 일로 부패와 인사를 꼽았었다.

최근 SK 수사로 관심사가 됐던 재벌개혁에 대해 盧대통령은 "시장과 제도를 세계기준에 맞게 공정하고 투명하게 개혁해 기업하기 좋은 나라, 투자하고 싶은 나라로 만들겠다"는 원론적인 표현만을 썼다.

그러나 盧대통령이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는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한다"고 한 대목은 향후 사회 전 분야에 거센 개혁의 파고가 밀려들 것임을 예고해주고 있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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