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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공포감주는 식인무용 메케 메케 <김찬삼 여행기 피지군도에서 제4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서울 수바 시에서 남쪽으로 약1백km 떨어진 바닷가엔 코를레부란 호텔이 있는데 이 지대는 둘도 없는 이색적인 관광지로서 세계 각국 사람들이 모여든다. 여기서는 바닷가의 모래 위에서 강렬한 햇빛으로 온몸을 태우며 해적 바이킹과도 같이 야성적인 식사를 하고는 밤이 오면 원주민들이 추는 메케 메케라는 살기와 전율이 휩싸는 춤을 보면서 즐긴다.
어쨌든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은 원시적인 생활을 꿈꾸며 오는 사람들이라 한결같이 속세를 떠난 기분으로 자연을 만끽하며 인생을 즐긴다. 항공기의 발달로 세계 어디서나 쉽사리 올 수 있기 때문인지 호주사람을 비롯한 유럽 사람들이 많이 와 있었다.
토요일 저녁은 바닷가의 뜰에서 이 섬의 독특한 전쟁무용이며 귀빈을 대접하는 의식을 베풀어준다. 해가 지는 이 섬의 바닷가의 경치는 유독 아름다우며 그대로 자연적인 무대의 배경이 되는 셈이다.
이들의 무용은 여자들의 노래와 춤으로 시작하는데 통나무 속을 파내어 울리게 만든 나무 속을 둥둥 두드리는가 하면 크고 작은 죽통을 아래위로 찧으며 내는 악기의 이상한 소리에 맞추어 춤들을 춘다. 우리들이 흔히 비좁은 무대에서 보는 그런 춤보다는 스케일이 너무나 크다.
자연적인 바다의 풍경을 배경으로 하여 널따란 뜰에서 가무가 벌어지니 이야말로 우주파 의 예술이다. 독일 사회학의 태두 지멜은 예술이란 인생과 자연에 대한 감사라고 말했듯이 이 원주민들의 춤이야말로 자연에 대한 최대의 예의일 것이다.
밤은 차차 깊어만 가는데 파도소리가 들리는 바닷가에서 고대악기라 할 토속악기의 반주로 벌어지는 이들의 밤의 잔치는 정녕 회고적이다. 어휘가 단조로운 노래가 아쉽지만 백인들은 손뼉을 치며 야단들이었다.
이 서곡이 끝나면 다음에는 카바연회의 시범이 벌어진다.
카바는 후추과의 식물로 만든 알콜성분이 없어 보이는 일종의 술인데 정기를 돕고 더위를 잊게 하는 효험이 있다고 한다. 이것을 코코넛의 속으로 만든 잔으로 마시는 이 독특한 의식이 바로 카바·파티이다. 이것은 본시 군신에 바치던 의식이라는데 지금은 축제나 파티나 또는 귀빈접대에 쓰인다는 것이다.
이 의식을 극화했다고 볼 수 있는 이 향연이야말로 지상최대의 쇼인데 그 양식이 다채로 왔다. 즉, 높은 자리에는 손님이 앉아 있고 낮은 자리에는 추장이 앉아있다.
그리고 손님 앞에서 얼마 떨어진 곳에는 여러 지방에서 모인 마타이(족장)들이 20여명 앉아 있으며 그 앞줄 복판에서는 카바를 만들고 있다.
여기 모인 많은 백인관광객들은 시커먼 손으로 짜주는 잿빛 감도는 걸쭉한 카바가 구미에 맞지 않아 차마 마시지 못하겠는지 슬금슬금 피하건만 나는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 쭉 들이켜고는 입맛을 다시며 한잔 더 줄 수 없느냐고 했다. 이때 족장들이 일제히 『오 야타』하는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매우 반가와 하며 『당신만이 우리들의 좋은 벗이오』라는 말을 하면서 한잔 더 따라주었다.
이 같은 의식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번엔 자연무대인 이 바닷가의 넓은 물에 30여명의 남자무용단들이 창·곤봉 등을 들고 나타났다. 얼굴은 알락달락하게 색칠을 하고 발목과 팔에는 잎을 달고 아래는 긴 나뭇잎으로 가렸는데 모두 무시무시한 표정들이다. 전체가 함께 추기도 하고 또는 편을 짜서 싸움을 시늉하기도 한다. 클라이맥스에 이르자 사람의 목을 자르고 접시에 놓인 사람고기를 먹는 모습을 재현시키는 식인무용을 춘다. 이것이 바로 소름을 끼치게 하는 메케 메케란 춤이다.
나는 맨 앞줄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힘있게 휘두르는 창이며 곤봉이 여러 번 내 몸을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백인 관광객들은 겁이 나는지 뺑소니 치기도 했지만 나는 한국인의 위신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물러서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여 아랫배에 힘을 팍 주고는 그들의 무기가 나의 목에 닿을락 말락 할 때마다 크게 웃어 보였다.
살기가 등등한 이들이 혹 실수를 하거나 하여 다치지나 않을까 하고 은근히 걱정스럽기도 했으나 까딱 않고 있었다. 춤이 다 끝났을 때엔 나의 등이며 앞가슴엔 온통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정말 드릴이 있는 무용이었다. 이 춤은 이미 피지섬만이 지니는 야수파(포비즘)의 무용이라고 이름 붙인다면 나의 패러독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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