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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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가톨릭 교회의 최고 목자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선종(善終)했다.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모여든 수만 명의 순례자가 눈물로 올리는'파파(신부님) 일어나소서'의 기도도 여든네 살 육신의 죽음을 멈추지 못했다.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라는 마지막 메시지를 남긴 교황은 이제 그가 섬기던 예수 그리스도의 품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신앙의 차이를 뛰어넘어 행동으로 세계인을 감화시킨 정신적 지도자를 잃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회고록 제목 '일어나 같이 갑시다'처럼 전 세계 가톨릭 신자를 행동으로 이끈 종교 화합의 전도사였다. '다른 종교의 진리를 배척하지 않고 존경한다'는 그의 '비그리스도교적 종교에 대한 선언'은 세계 평화를 향한 외침이었다. 그는 박해의 땅 폴란드의 아들로서 교회 회개에도 앞장섰다. 교황은 2000년 가톨릭의 역사에서 교회가 저지른 일곱 가지 죄를 처음으로 공식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로 가기 위한 생명의 발걸음 맨 앞에 늘 그가 있었다. 인류가 잊을 수 없는 큰 빛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우리나라를 두 번이나 찾아 특별한 인연을 남겼다. 그는 1984년 5월 '벗으로서, 평화의 사도로서' 한국에 처음 온 교황이 됐다. 80년 민주항쟁의 아픔을 겪은 광주로 첫걸음을 옮겨 용서와 화해를 호소하던 그의 목소리는 뜨거웠다. 소록도 환우를 찾아 상처를 어루만지던 그의 손은 따뜻했다. 89년 가을 서울에서 열린 제44차 세계성체대회를 직접 치른 교황은 얼마 뒤 그가 염원했던 동구권 공산주의의 해체와 냉전의 종언을 보면서 북한 인권과 교회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그가 간절히 원했지만 북한에 가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억압당하고 고통받는 이 곁으로 몸을 낮추던 교황은 "두려워하지 말고 세상의 문을 활짝 열라"고 말했다. 병으로 누워 있는 와중에도 중국 대륙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기도했다는 그다. 10억 세계 가톨릭 신자는 신앙의 아버지를 여의었지만 60억 세계인은 평화와 인권의 기수를 잃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빠질 뿐 나아지지 않으며 어려움만 더해가는 이 시대에 저는 여러분의 대변자요, 양심의 소리가 되겠다"던 교황의 빈자리가 더 커보이는 것이 오늘의 세계다. 종교와 이념과 국경을 뛰어넘어 인류 모두가 그의 서거를 한마음으로 슬퍼하는 까닭이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정의감과 정신을 잇는 새 교황의 탄생을 위해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