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5)악서추방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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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책은 문화의 깃발이다. 한나라의 출판문화는 그 나라의 문화수준을 나타낸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나라 출판문화가 우리 나라 문화수준을 나타내고 우리문화의 깃발이 되기에는 너무나 한심하다. 초라하고 무질서해서 우리 나라에 출판문화가 있다는 말을 하기조차 쑥스러운 지경이기 때문이다.
악순환적인 논법이긴 하지만 우선 우리 나라에는 독서하는 인구가 적다. 한국사람들의 독서량은 이웃나라 일본의 5백분의 1밖에 안된다고 한다. 또한 책값을 앞질러 치솟는 자재값 때문에 출판업자는 생산과정에서 일단 녹초가 되고 건실한 서점이 없어 하는 수 없이 책을 들고 가가호호 가정을 방문, 책을 떠맡기고 책값은 매달 구걸하듯 한푼 두푼 받아오는 것이 오늘의 출판계 현실이다.
양서의 평가가 내용이나 조형에 있지 않고 판매성적에 달려있는 사회는 건전한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출판문화를 좀먹는 가장 큰 것은 값싸게 내용이 나쁜 책을 만들어 대중에게 무턱대고 뿌리는 것이다. 이 지경에 이르면 책은 문화의 깃발이 아닌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대중이 흥미 있게 읽을 책을 아무렇게나 많이 만들어 돈이나 실컷 벌어보자는 배짱이 판치고 있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너저분한 책, 정당하게 된 출판책이 아닌 해적판, 이와 같은 책들은 양서의 뒷덜미를 친다. 뒤늦게나마 당국에서 대대적인 악서추방운동을 벌인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악서를 멀리해서 국민의 정신적인 건강을 지키고 양서의 앞날이 보장되어 우리 나라에서도 출판문화가 명실상부하게 우리문화의 기수역할을 다할 날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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