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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라디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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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올해는 미국의 본격적인 라디오국이 새계 최초로 방송을 시작 한 뒤 꼭 반세기째가 되는 뜻깊은 날이다. 즉 「피츠버그」 시에서 웨스팅하우스 사가 설립한 KDKA 방송국이 50년전인 1920년 11월2일에 첫 방송을 개시한 것이다. 그로부터 방송 견업은 비약적 발전을 거듭해왔고, 이제 이 정신사회가 실현헤 가는 과정에 오르기에 이르렀다. 지난 반세기 동안의 단자파산업의 화려했던 자취를 더듬어 봄과 동시에 어느 정도나 발전돼 나갈 것인가 추측해 보고자 한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가강 큰 특징은 말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말하면 통신을하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의사소통의 흥망이 크고 이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생활의 주기적 동기를 통신에 의존하는 동물은 인간을 빼고는 전혀 없다.
반세기 맞은 상업「라디오」
그러나 공기 진동인 소리의 전달은 시간적 공간적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므로 인간은「말」을 구성하는 모형을 1대1로 대응, 부호화 하고자 문자를 발명하였고 이를 기록하여 시간적 제한을 타파하고자 기억의 기능을 확대하여 갔다. 공간적인 재한은 마피르수 양피지두 같은 것에 의존했고, 파발제도에 의한 화변제도는 알렉산더 대왕시대에 이르러 발촉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모르스가 전신술을 발명하고 1851년에 미시시피 계곡 전신회사가 발족함으로써 공중전보가 취급됐으며 대륙간 횡단철도의 건설과 더불어 통신 철도수송망이 전국적으로 뻣쳐갔다. 그 당시 레이업·벰 이온전화를 발명하게 되어 WL(웨스턴·유니언 회사)에 허권을 매도코자 하였으나 이를 각하 당하여 자기 회사를 세우고 독특한 경영사상에 의한 벨·시스템을 개발했다. 이것은 가설비만 부담한 뒤 전화기와 전화선을 빌려주고 교환망과 중계회선의 이용에 따른 요금을 부담케 하는 도수료 통화의 개념을 채택했던 것이다. 이 전화는 1889연 스드로저에 의하여 발명된 스밀·바이·스템망 방식 자동교환기를 거쳐 1920년에 실용화된 살로스바, 자동교환기를 계기로 기계적 기능적으로 개발, 활용되기에 이르렀고 또한 미래성 있는 전자교환기로의 연결을 가져오게 했다.
사상 첫 생방…카루소 독일의 물리학자 헬츠가 전자파를 발견한 것은 1888년이며 2년 뒤에 블란서의 크히라가 전파기를 발명하여 전자파가 통신에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시사하였다. 1895년 「이탈리아」의 「마르코니」는 전도전신개발에 성공하였으며 1901년엔 대서양 횡단무선 여신개통에 성공했다. 이것은 영미「마르코니」회사 간에 이루어졌으며 영 미 양 정부와 재계의 원조가 컸던 것은 물론이다. 이 성공을 본 마르크니는 전파에 인간의 음성을 실는 연구, 즉 무선전화 개발에 손을 댔다. 이것은 반송파의 진폭을 음성과 조하려고 한 것이다. 오늘의 상업적인 AM방송은 여기에서 발달된 것이 아닐는지. 1904년에 프레미는 음극관을 발명했고 「포레」가 3극관을 발명했다. 진공관을 이용한 회파 및 증폭회로가 비로써 개발된 셈이다. 포레와 그 협력자 「페센덴」이 1910년 1월에 뉴요크 메트러폴리턴·오폐라·하우스에서「카루소」의 독창을 생방송한 것은 사상 최초의 라디오 방송이었다.
이에 자극을 받은 업계는 기업화를 위하여 미국「마르코니」회사, GE (케너럴·일렉트릭) , WE(웨스턴·일렉트릭), WH (웨스텅하우스) 등이 격렬한 경쟁을 벌였는데 결국 GE, WE, WH 3사 공동출자로 수지하는 바의 RCA가 설립되게 되었다. 그 당시 WH의 큰라드는 자택에 송신기를 설립하고 축음기에 마이크를 대고 몇 명의 친구에게 방송을 해왔다.
항의 받았던 광고 방송
이것이「디스크·자키」(DJ)의 시초다. 당시 WH에서 생산한 회석검파「라디오」를 대중상품으로 발매함으로써 방송국에 회사의 광고자와 수신기 대상 이윤으로 채산이 맞을 것이라고 판단되어「KDKA」국이 고업국으로 발족된 것은 앞서 마땅한 터였다. 그리하여 라디오 사업은 승산을 거듭하였던 것이다.
당시의 미국인들의 충고방식은 「라디오」란 국민의 오집과 교육에 사용되어야하며 사리사욕을 버리고라도 이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KDKA국 당사자들마저도 「라디오」수상기의 이윤과 PR로써 방송은 충분히 균형이 잡힌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광고를 목적으로 하는 방송시간을 팔아서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려는 것은 유식유력과 위교도의 생활감정에 위배되며 기부에 의존하여 방송을 운영하여야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광고방송을 시작하는데는 용단이 필요했었던 것이다.
골든·아워엔 CM 금지
도덕적 비난을 각오한 민영국의 CM방송 삽입도 「프로」제공에 그쳤으며 1930년대까지는「골든·아워」의 CM방송은 원칙적으로 금지되다시피 했다.
또한 난립한 많은 방송국은 경영난으로 「라디오」 제조업자와 결합하게 되어 강력한 방송망 헝성의 소지를 닦아 놓았다. 한편 ATT (미국보신전화회사) 는 방송기업에 진출키로 결정하고 RCA연 엑스포에 참가했다. RCA자체도 수신기 생산을 개시하고 GE, WH도 지방에 방송국을 세우게 됐는데 어떤 회사의 경우 자사보유 전화회선으로 상황 중계방송함으로써 프로그램 제작비를 싸게하는 동시에 연주 설비를 집중적으로 시설하고 적신망 단말에 송신 시설만 구비한 한 네트국을 설치하여 넓은 서비스구역을 확보하는 동시에 스폰서의 확보도 용이하게됐다. 말하자면 양수겹장식 이익을 볼 수 있게 됐다.
따라서 ATT는 WEAF국을「기」국으로 2년간에 26국의 네트국을 만들어 축구 중계로 "청취자들을 열광케 했다. 그레서 RCA도 같은 방법으로 방송망 건설에 나섰으나 ATT의 회선을 사용할 수 없는데다가 ATT의 8KC 대폭전송의 양질방송에 비하여 3KC의 좁은 대폭을 가진 포상 전화사용으로 좋지 못한 방송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ATT의 방송쟁업에 있어서의 우위성은 확고부동했으나 1926년 반 트러스트 법저촉을 우려하여 방송에서 손을 떼지 않으면 안됐다. 이런 움직임에 따라 RCA는 ATT의 「키」국을 매수하고 또한 방송중계회선의 제공을 받아 NBC방송망을 설립했다. 이 때 운영비는 RCA,GE,WH의 3대「라디오」 제조업자의 수신기 정상 이익의 2%를 매년 제공받아서 충당했다.
방송국 난립에 혼신 초래
방송사업의 호경기를 타고 수백의 방송국이 난립되게 됐다. 당연히 주파수 할당 문제가 야기됐다. 라디오는 표준방송으로서 현재에는 5백35∼1천6백 5KC내에 배정되며 대역폭을 최소 LKC로하여 혼신방지를 꾀하고있으나 이런 제한이 없었던 당시 혼란을 일으킨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혼신이 없는 명료한 방송을 대망하는 것은 자연적 현상이며 이에 따라 FCC (연방통신위원회) 가 발족됐으나 1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확고한 결정을 못내리고 있는 실정이다.
주파수 할당의 완화를 위하여 단파·초단파에 관한 기술연구가 이루어져 초단파대의 FM방식에 의한 FM방송이 실현 되었으며, 음의 입체감을 주는 「스테례오」방송과 특수부대 업무인 SCA방송도 동일 주파수에 동시에 실릴 수 있게 되었다. 방송을 더욱 향상시킨 것은 개발돼 나온 전기축음기와 자기 녹음기였다. 또한 수신기는「트랜지스터」개발로 소형화 되고 IC (집적회로), LSI (고집적회로)의 도입으로 초소형화 돼서 팔목시계의 크기로 되었으며 2불 이하의 제품이 나와 대중화를 촉진시켰다.
한국선 27년에 첫 전파 한국의 방송은 일제시대인 1927년 경성방송국으로 개시되었다.1950년 6·25동난으로 남한에 산재했던 각 방송국의 기계가 전파되자 정부에서는 방송망재건에 노력을 경주했다. 그 결과 현재 5백km국을 비롯하여 전국에 30국의 국영방송망을 확립했고 민영으로는 1954년 기독교방송국을 시초로 힌재 28국의 상업국이 있다. FM도 1963년 서울 FM으로 개시되어 4국이 개국될 예정이다. 음향면에서는 「라이츠·마이크」로부터 고감도의 베로시티·컨덴서·마이크로 대폭 개량되었고 레코드· 디스크 녹음에서 와이어 녹음을 거쳐 자기 테이프 녹음기로 질적인 향상을 봄과 동시에 테이프에서는「릴」형이 카트리지형, 카세트형으로 취급이 간편화 돼 왔다. 연주소송신소 간 중계선도 유선에서 전작으로 또한 FM 1백 MC(메가·사이큘=1백만사이클) 대송수신에서 9백30MC대로 이동하여 장족의 발전을 보았다. 취재보도를 위한 극초단파 휴대국의 출현으로 국보성을 가속하였으며 긴장감을 주었고 자주국의 신고로 취재망은 일약 국제적으로 확대됐다. 그리하여 라디오 서국 FM4국 TV 국 도합 1백12국의 방송국이 현재 공간을 전파로 수 놓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불행히도 휴전선이북에서는 수많은 북괴방송이 대남선전방송을 하여 이 좁은 방송주파대를 더욱 혼란케 하고 있다.
전신전화사업은 장거리정보전달에 개념을 채택하였으며 일시 통신조직의 영구적 설립이 사회·경제적으로나 국가정책적으로도 중요한 사보이라는 것이 인식되었으며 또한 보증되었다. 1876연에 「벨」이 전화를 발명했을 때는 시설비가 적은 단신이 유리하다고 섕각됐기 때문에 기능적으로 이용범위가 크고 변리한 전화가 초기에는 보급이 완만하다가 차차 기구전체의 변혁이 급속도화 되면서 전업계에서 전보가 현저한 타격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가입 전신으로 전용통신 서비스를 함으로써 흑자를 내게하는 동시에 「데이터」통신의 기반을 이루어 놓았으며 해저동축「케이블」과 통신위성에 의한 국제간 자주통신까지 발전함과 동시에 전자교환기 ESS까지 나타났다.
다원화하는 라디오시대「라디오」 사업에서 영상 전송의 꿈이 이루어져 동기제어 방식을 고안하여 사진전송 팩시밀리의 기초가 이루어졌고, 브라운관과 「튜브」의 발명으로 TV사업이 시작됐다. TV사업은 천연색 TV로 또한 유선 TV (CATV)로 급속도로 발전돼가고 있다. 이 모든 정보산업에는 공통된 정보의 흐름이 있으니
①정보의 발생 및 수집. 여기엔 기계화 가능한「비든(BIT)정보와 비「비트」정보가 있다. 비트정보는「디지탈」정보로서 기업내의 회계, 통계,「데이터」,과학, 기술 문헌이다. 이에 사용되는 기기는 텔리타이프, 펀치카드 인쇄기 등이다. 비 비트정보는 아날로그 정보로서 이 기기로서는 영화촬영기, 「카메라」,현미경, 녹음장치, 마이크로르필름 등.
②정보의 가공. 여기엔 전자계산기의「하드웨어·시스팀」이 있다.
③정보의 전달. 여기엔 유·무선 통신「시스팀」, 전화기·교환기·「데이터」·수송 「시스팀」이 있다.
④정보의 배포. 여기엔 「라디오」· TV방송, 사진전송,「팩시밀리」등이 있다. 이 정보산업의 기술적·기능적 기계는 각 국별로 개발되고 신제품이 속출하였으나, 이 모든 것이 종합되어 동일 목적을 위하여 기능이 집결되어 가고 있다.
이것은 「라디오」·TV· 전화 뿐아니고 잡지·신문 등의 정보도 동일한 「에네르기」단위로 환하여 어느 곳에나 신호로써 송신이 가능하며 수신측에서는 이 신호를「브라운」관상의 영상 또는 녹음된 음성·인쇄 된 글의 어느 것이라도 원하는 대로 변환하여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전자식의 통신매체를 통해 단기의 출현은 이제는 꿈이 아닌 것이 됐다. 이렇게 됨에 따라 정보기업도 집단기업화 (컨글로머리트)하여가고 그 예로는 미국의 ITT(국제전신전화회사) 를 들 수 있다. 이 회사는「컴퓨터」생산은 안하고 있으나 컴퓨터이용 서비스에는 야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있다.
현존 통신계에 큰 변혁
특히 국제 통신을 배경으로 통신선에 의한 시분할 서비스와 리모트·배지처리에 크게 진출하고 있으니 분명히 집단산업을 지향하고 있다 하겠다. 현대는「컴퓨터」의 출현으로 「디지탈」화 기술로 통일되어 가고 있다.「디지탈」이란 말은 아날로그에 대한 말로서 디지탈이 계수적 또는 계산적이란 의미를 갖는데 대하여 아날로그는 상수적 또는 연속적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라디오는 음성을, TV는 영상을 보낸다는 개념적인 구분은 통용되지 않게 되며 「디지탈」화 기술의 등장은 모든 통신을 전기 펄스의 단위 변환하여 같은 통신중계계통을 경유하여 전송할 수 있게 됐다. 예컨대 「팩시밀리」(모사전송)은 송신측과 수신측의 지질의 차만 제거하면 완전 복제인쇄와 다르지 않다. 그리고 「디지탈」전송과정을 거치면 수신측에서 인쇄복원도 가능하지만 더욱 좋은 것은 TV수상기 비주얼·디스·플레이 장치로 화상으로 볼 수 있으며 자체의 변형으로도 재생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전송과정에서 음성을 이용한다고 하자. 그러면 인간이 마이크 앞에서 말할 때 그 음성은「디지탈」화하여 인식조직을 거쳐 타자기 구동부호로 되어 문자로 나타나게된다.
즉 음성정보가 활자정보로 변용되는 것이다. 반대로 작용시키면 문자가 음성으로 통용하는 속사기계도 가능하게 된다. 지금까지의 개별적인 기능을 가진 전기통신전달매체가 「디지탈」 기술과 컴퓨터의 중개로 단일통신계통이 생기게되며 현존의 통신계는 없어지지는 않으나 근본적인 변혁에 부딪치게 마련이다.
활자·전기통신 재 합류
그 첫 걸음이 팩시밀리 (가정전파신문) EVR (예자비데오녹화필름) 일 것이다. 통신의 역사는 통신근원은 같으면서 방법에는 활자와 전기통신방법으로 분화되어 발전된 뒤 또 다시 하나로 합류되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개별 통신에서 대중통신으로 되었지만 이를 혼용하는 방법이 가능케 될 것이다. 이것은 PCM (펼스부호변조) 의 개발로 통신로의 다중화에 의한 용운의 증대에 기인한 것이다. 반송파의 고주파와도 연구되어 지중에 도파관을 묻어 「마이크로」 파보다 짧은 전파로 통신하는「밀리」파 통신의 보용화도 가까운 장래에 이루어질 것이 예상되고 있다.
또 지향성이 강하고 주파수 대역폭이 극도로 큰 레이저 통신도 가능할 것이다. 이런 연구성과는 한 선로로 개별통신, 「그룹」통신, 매스컴 통신이 가능하게 되며 임의의 지식 송과페키지를 자기 의지로 선정, 입수하게될 것이다.
「소리」란 매체는 영존한다
한국 「라디오」 방송의 전망은 TV방송의 영향을 받아 사양화 되어 가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중파방송국의 수와 수신기 모수는 증가 일로에 있으며 운영면에 있어서도 착실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주파수 대폭의 한정으로 중파에서 초단파에의 이항, 즉 AM에서 FM에의 이항은 공적으로나 이용면으로 보나 틀림없을 것이다. 「스테레오」 방송은 물론이거니와 정경음악을 주로한 SCA도 실시 될 것이다.
방송시설면에서 송출기기와 송신기의 원격조종과 자동화는 물론 이루어질 것이지만 신기술의 집적 계통의 통합화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소리에 의한 매스컴을 「라디오」 방송이라 하겠는데 인간이 공기를 호횹하고 공기 진동으로 인한 소리를 가장 간편한 정보매개체라고 생각하고 있는 한 방송은 존속돼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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