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에 바란다] 上. 세계지도 펴고 '생존 비전' 찾기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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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대한민국의 5년을 새로이 이끌어갈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하는 우리의 바람과 기대는 어떤 것인가.

盧대통령은 세계 지도를 자주 쳐다보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그것은 하루하루 격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한국이 나아갈 길을 모색해야 하는 대통령의 임무를 강조하려는 뜻이 아니다. 그보다는 대한민국이 처한 지정학적 위치가 얼마나 위태롭고 불안한 것인가를 항시 유념해 달라는 뜻이다.

세계 지도를 펼쳐 놓고 아시아 대륙에 초점을 맞춰보면 동쪽 끝 한반도 남쪽에 위치한 한국이 지금처럼 존립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예외적이며 불안한가를 직감하게 된다. 아시아 대륙의 북쪽은 온통 러시아 땅이다.

한가운데 넓은 땅은 중국이 차지하고 있으며 동남쪽에는 인도차이나 반도를 시작으로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가 위치하고 있다. 그 동북쪽에 작은 돌기처럼 뻗어 있는 것이 한반도며 한국은 그 남쪽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한반도의 크기가 너무 작은 것이 불안의 요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중국.베트남, 그리고 북한 등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들을 한 색으로 칠하고 나면 한국만이 한반도의 남쪽에서 민주국가로 존립하고 있다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에 걸쳐 그토록 아슬아슬한 지정학적 위치에서 대한민국이란 민주국가를 지키고 키워올 수 있었던 것은 자유에 대한 우리 국민의 한결 같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늘도 우리를 도왔을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희생이, 피와 땀과 눈물이 이를 가능케 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한.미 동맹이 이를 뒷받침해온 것도 결코 잊을 수 없다. 이토록 냉혹한 지정학적 시련은 오늘도 우리를 긴장시키고 있다. 한반도는 여전히 냉전시대의 마지막 대결의 장으로 남아 있으며, 우리는 아직도 분단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기에 이 어려운 상황에서 나라를 이끌어갈 책임을 맡게 된 盧대통령에게 우리는 많은 바람과 기대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재작년 서울에 왔던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의 말이 기억난다. 싱가포르는 빠른 속도로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성공 사례로 칭찬받지만 지정학적으로는 말레이시아 남단에 위치한 작은 섬에 지나지 않으며 좁은 해협 건너에는 세계 최대의 모슬렘 국가인 인도네시아가 있다는 취약성을 한시도 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정학적 취약성'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국가의 존망을 좌우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盧대통령이 지도를 자주 보며 우리의 위치를 재삼 확인하는 대통령이 되기를 거듭 바라게 된다.

세계화 시대의 격랑을 헤치며 나라의 위상을 높여 가려면 무엇보다 경제력을 계속 신장해야 한다. 가난하면 발언권도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 국제 사회의 냉엄한 현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 경제는 '마(魔)의 1만달러'란 덫에 걸린 채 몇 년째 몸부림치고 있다.

1995년 우리는 1인당 소득 1만달러, 수출 1천억달러의 고지에 도달했고 이른바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됐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아직 그 1만달러 선에서 헤매고 있다. 그간에 외환위기란 엄청난 시련을 겪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발목을 잡은 가장 큰 원인은 경제 발전에 대한 확고한 국가적 목표와 전략,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국민적 합의와 결의가 부재하거나 부실했던 것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모두는 盧대통령이 우리 경제를 빨리 1만달러 선에서 벗어나 1만5천달러대로 성장시키는, 그리하여 2만달러의 고지를 넘보는 국민적 의욕을 북돋워주는 지도자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힘이 있어야 당당할 수 있고 나라를 지킬 수 있다. 확실한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적 화합과 호응을 이끌어낼 지도자를 기다릴 뿐이다. 盧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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