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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비즈 칼럼

학교 텃밭, 아이들이 밝아졌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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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서울 충무초등학교 학생들의 일과는 ‘텃밭 가꾸기’에서 시작한다. 아이들은 아침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직접 심은 고추와 토마토에 물을 주면서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흙 내음을 느낀다. 또 흙 속 지렁이가 땅과, 땅에서 자라는 식물을 튼튼하게 한다는 사실도 배운다. 하루 세 끼 먹는 쌀의 생산 과정을 배우기 위해 충남 홍성에서 벼농사를 짓는 농업인을 초청해 벼 모종법을 배우기도 한다. 직접 심은 치커리·상추·토마토·옥수수·가지와 같이 다양한 작물에 대한 관찰 일지를 작성하면서 자연의 신비함과 소중함도 깨닫게 됐다.

 이 학교는 2011년 11월 잡초만 무성하던 공터를 텃밭으로 가꿨다. 학교 내 녹지 조성과 인성교육 강화를 위해서였다. ‘돌 걸러내기’와 토질개량을 위한 객토 작업을 거쳐 지난해 3월 본격 운영을 시작했다. 이 학교 이재관 교장선생님은 말한다. “단언컨대 학교 텃밭을 운영하고 나서 아이들이 착해졌어요.” 이 말을 들으면서 학교폭력으로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 요즘 아이들의 인성 문제 해결에 학교 텃밭이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텃밭의 효능은 비단 초등학생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원장 시절 연구원 잔디밭에 보리를 가꾸면서 발견한 직원들의 변화도 인상 깊었다. 처음에는 의아해하고 시큰둥하던 연구원들이 나중에 보리가 자라는 것을 보면서 아이처럼 기뻐했다. 텃밭의 가치는 이처럼 우리가 아는 것 이상일 수 있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일찍 텃밭의 가치, 더 나아가 농업의 가치를 인식한 선진국에서는 학교 텃밭 활동이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20여 년간 학교 텃밭 활동을 국가적 차원에서 운영해온 미국이다. 미국에서는 학생들이 텔레비전과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면서 상상력이 고갈되고 비만에 시달리는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됐다. 미 농무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장에서 학교까지(Farm to school)’라는 특화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학생들은 텃밭 학습과 식습관 개선의 기회를 얻었고, 농업인들은 농산물의 판로 확보와 농업 이미지 개선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우리도 이제 본격적으로 학교 텃밭 확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3곳의 학교 텃밭 시범초등학교를 시작으로 2015년 60개교, 2020년에는 현재 전국 특별시·광역시 1756개 초등학교의 10% 선인 180개 학교에 텃밭을 보급할 계획이다. 더 많은 학교에서 자발적으로 학교 텃밭 가꾸기에 참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먼 곳으로 나갈 필요 없이 자연을 매개로 선생님과 학생 그리고 친구 사이의 유대를 강화하고, 정서를 순화하는 데 학교 텃밭만 한 것이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교육 이론가인 루소·페스탈로치·몬테소리·프뢰벨 모두가 입을 모아 “살아 있는 자연에는 인간을 직접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키워져야 한다”고 주창한 이유를 되새겨 볼 때다.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