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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흐르는 별은 살아있다」의 저자「등원데이」여사의 수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내가 의식불명에서 깨어난 것은 미군「트럭」에 실릴 때였다.
이렇게 해서 우리들 네 식구는 이내 개성에서 의정부의 수용소로 후송되었다.
산 속을 헤매고 38선을 넘느라 나는 양쪽 신발도 없는 채 후송됐다. 걸을 힘도 잃어버린 나는 딸을 업고 동물처럼 기다시피 해서 개천에 나가 비누도 없는 세탁을 했다.
『엄마! 이것 얻었어요.』
장남이 먼지가 뿌연 신작로를 달려오면서 외마디처럼 외치며 좇아왔다. 손에는 주먹밥 두개를 쥐고 있었다,
『하얀 옷 입은 할머니가 주었는걸….』
장남의 눈은 목적을 달성한 사냥꾼의 눈처럼 빛나고 있었다.『잘했구나. 한 개 씩 나눠 먹으렴.』눈물이 바싹 메마른 길바닥의 먼지 위에 뚝뚝 떨어졌다.
얼마 후에 우리들은 기차 곳간에 타고 대망의 부산까지 후송되었고 여기에서 배편으로 「하까다」(박다)에 상륙했다.
「나가노껭」에 도착한 다음 어린애들은 날로 건강이 회복되어 갔으나 나의 몸은 도리어 쇠약해가기만 했다.
소련군에 끌러간 남편으로부턴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생사를 알아볼 길도 없었다.
『죽어버린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살아남아서 세 아이들을 길러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앉았다가 일어서려고 하면 빈혈이 와 기둥을 붙잡았다가 쓰러지는 일이 빈번했다.
남편은 그해 12월 중순의 추운 어느 날 아무런 예고도 없이 돌아왔다.
『용케 일가족 네 사람이 모두 무사히 돌아와 있었군.』
돌아온 첫마디였다. 병석에 누워있었던 나는 기쁨이라기보다는 놀라울 뿐이었다.
『일가족 전멸이냐? 아니면 아내만이라도 살아서 돌아왔겠느냐? 하며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고열에 신음하는 내 베개 맡에서 남편은 이렇게 기뻐하는 것이었다.
남편은 나를 살리려고 갖은 애를 다 썼다. 그 덕분이었는지 일본에 돌아 온지 꼭 2년째 되는 해의 가을, 나는 집안을 거닐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됐다. 양지쪽의 마루 끝에 차분히 앉아있자니「살아서 돌아와 줬군」하는 실감이 느껴졌다.
그로부터 2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38선을 넘기 전 굶주려 영양실조에 걸린 나를 도우려고 온종일 들판에 나가 버들명아주(일본이름으로「아까쟈」라고 부름)를 따러 다녔고 산에 가서 땔나무를 주워 다 주던 장남은 대학의 이공과를 졸업, 어엿한「엔지니어」로서 자동차 회사에 다니고 있다. 그 장남이 얼마 전 애기 아버지가 됐으니…. 그러나 그는 그 당시의 일을 생생하게 알고 있은 탓인지 때의 이야기만 나오면 금새 어두운 표정으로 밖으로 나가버리곤 한다.
나는 그럴 때마다『마음속에 아직도 얼마만큼 깊은 상처가 남아있기에 저럴까?』하고 가엾은 생각이 들었다.
차남도 벌써 27세가 됐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해 지금은 대학의 교관으로 있다. 그는 만주에서부터 일본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일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 그저 38선의 산 속을 헤맬 때 가시덤불에 찔린 상처가 아직도 그의 양쪽 발에 남아있을 뿐이다.
『이쪽 발의 상처는 왜 생겼지요?… 그때 나는 신발도 없었던가요….』
내가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듯『좀더 기술적으로 탈출해 오는 방법이 없었을까?』남의 이야기처럼 중얼거리기도 하고 어쨌든 둘째 애도 퍽 명랑한 청년이 된 것이
다행스러울 뿐이다.
내 등에 업힌 채 숨소리도 들리지 않고 늘 생사의 경계를 오락가락했던 큰딸은 대학을 나와 결혼했다. 물론 38선을 넘어 살아 남았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
『대견스럽게 성장했네.』자기의 날씬한 팔 다리를 보면서 가끔 이런 말을 한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탓인지, 지금도 책 읽는데 여념이 없는 탓인지, 큰딸의 생각과 행동은 현대인답게 절도가 있다.
그들 셋을 키우기 위해 38선 탈출에서 지금까지 나는 전력을 다했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어렸을 적에 같은 또래의 애들보다 훨씬 발육이 늦었을 때 어떻게 하면 이를 따라가게 할 수 있을까. 더욱 귀환의 고통을 이겨나가고 있는 애들에게 어떻게 하면 과거의 경험을 살리면서 인생에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줄까 하고 노력해 왔다.
누구이든 긴 인생에 있어서 한두 번은 반드시 실의(실장)에 잠길 때가 있게 마련이다.
그때 어떻게 하면 그 실의의 나락을 뛰어 넘을 수 있을까. 그 힘을 애들에게 키워주자고 생각했다. 그것은 전혀 암중모색 같은 것이었지만 애들은 중학·고교·대학을 순조롭게 마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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