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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제조업체 85%, 통상임금 늘리면 신규 채용 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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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이동근(왼쪽 둘째)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을 비롯한 상의 회장단 대표가 3일 대법원 민원실에서 통상임금 관련 탄원서를 제출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GM 부평공장에는 지난달 법원에서나 볼 법한 서류가 돌았다. 통상임금 소송에 대한 최종 판결이 날 경우 2007~2010년 임금에도 소급 적용할 수 있도록 법적 절차를 밟기 위한 서류(최고서·催告書)다. 노조원 1만여 명이 서명을 했다. 이 회사에선 3건의 통상임금 소송이 진행 중이다. 회사는 이미 패소에 대비해 비용 8000억원을 지난해 회계에 반영했다. 이는 한국GM의 지난해 3400억원 영업적자의 원인이 됐다. 한국GM 관계자는“한국 GM은 세계 165개 GM 공장과 경쟁 관계에 있는데 통상임금 소송이 한국 공장에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대기업만이 아니다. 부천 소신여객은 지난 6월 상여금은 물론이고 여름 휴가비를 통상임금에 포함하라는 1심 판결(인천지법)을 받았다. 최근 전국 상의를 순회 방문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모든 기업이 한결같은 걱정이 통상임금”이라며 “공멸의 문제이자 생존의 문제”라고 말했다.

 통상임금 논란이 다시 커지고 있다. 5일 대법원의 공개 변론을 앞두고서다. 현재 통상임금 관련 각종 소송은 160여 건에 이르고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회사는 전체 기업의 80%에 달한다. 통상임금이란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을 말하며 각종 수당과 사회보험료·퇴직금 등을 산정할 때 기준이 된다.

 공개변론을 앞두고 전국 71개 상의 회장단은 3일 대법원을 찾아가 탄원서를 냈다. 이들은 “통상임금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미칠 막대한 영향과 경제적 파장을 충분히 고려해 현명한 판결을 내려주길 간곡히 호소한다”고 밝혔다. 71명의 전국 상의 회장이 모였다는 것 자체가 재계의 걱정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노동계도 4일 대법원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탄원서를 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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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심 판결이 대부분 노동계 손을 들어주고 있기 때문에 몸이 단 것은 재계다. 재계는 최근 법원 판례와 달리 정기 상여금을 제외하고 ‘매월 지급되는 임금’을 기준으로 통상임금이 책정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정기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경우 기업이 부담해야 할 추가비용은 3년치 소급분과 퇴직급여충당금 증가분을 합쳐 총 38조5509억원에 이른다. 경총은 인건비 부담이 늘면서 날아가는 일자리가 최대 41만8000여 개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특히 자동차 산업의 타격이 클 전망이다.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에 따르면 자동차 업종에서만 6조8000억원의 추가 부담이 발생한다. 특히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부품업체에선 1만2635개의 일자리가 줄어 대기업인 완성차 업체(1만801명)보다 타격을 클 것으로 전망됐다. 대한상의가 126개 중소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84.9%가 “통상임금 판결이 신규 채용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답했다. “경영에 심각한 타격이 될 것”이란 응답도 42%에 달했다. 박종갑 대한상의 상무는 “임금이 1%만 올라도 기업 경영 계획을 다시 짜야 하는데 통상임금에 정기 상여를 포함하면 임금이 평균 16% 오른다”며 “단순히 기준을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기업 생존이 걸린 문제”라고 말했다.

 재계는 특히 기본급은 적고 상여금과 수당이 많은 현재 임금 체계는 노사 간 합의와 정부 정책에 따른 결과라는 점을 강조한다. 정부는 1992년부터 총액임금제를 실시해 기본급의 인상을 억제했다. 김동욱 경총 기획홍보본부장은 “정부는 임금 인상을 억제했고 노조는 더 많은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며 “이 사이에서 생긴 고육지책이 각종 상여금의 신·증설”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훈중 한국노총 대변인은 “통상임금 문제를 법리가 아닌 경제논리로 풀면 안 된다”며 “빚이 있는데 경제적 능력이 안 된다고 갚지 말라고 할 순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김대환 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은 “임금 체계를 단순화하고 연공형 임금 체계를 직무형 체계로 개편해야 한다”며 “경제 주체가 수용할 수 있는 합리적 임금체계로의 개편과 정착은 피할 수 없는 과제”라고 말했다.

김영훈·채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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