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교수의 추천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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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옛날에는 영웅이 혁명가였다. 요즘은 영웅이 CEO다. 그런데 CEO 인문학 강의에 나가보면 그들의 결핍이 느껴진다. 사회에서 원하는 건 다했는데, 삶이 헛헛한 거다. 내 인생이 뭐냐는 거다. 많은 사람이 남의 욕망을 욕구한다. 그걸 자기 욕망으로 착각한다. 거기에 행복이 있을까. 자신의 욕망을 추구할 때 우리는 행복해진다.”

 진중권 교수는 “손발이 오그라든다”며 쑥스러운 표정으로 책 세 권을 추천했다.

◆구약성서 시편 23편=독일 시인 쉴러에 따르면 지식인은 대중이 듣고 싶어하는 얘기가 아니라 들어야 할 얘기를 해야 한다. 하지만 사회적 발언에는 늘 위험이 따른다. 무차별한 공격과 부당한 음해를 당할 때 암송하는 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발터 베냐민 지음, 최성만 옮김, 길)=더 정확히 말하면, 파울 클레가 그린 ‘앙겔루스 노부스’라는 그림이다. 독일 문예평론가 베냐민은 ‘역사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이 그림을 ‘역사’의 은유로 사용했다. 역사의 천사는 강한 바람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날개를 펼친 채 파라다이스로부터 점점 멀어져 간다.

◆파우스트(요한 볼프강 괴테 지음, 정서웅 옮김, 민음사)=세상으로 들어가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저당 잡히기를 마다하지 않으나, 그 무모한 노력의 끝에 궁극적으로 구원에 도달한다는 모티브. 그 모든 인식과 도덕의 오류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내 삶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위안을 이 책에서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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