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한·중 관계의 '정상복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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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장

‘마음과 믿음을 쌓아가는 여정(心信之旅)’을 표방한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6월 중국방문은 중국 지도부와 국민들의 전례 없는 환영과 높은 호감을 얻어 한·중 양국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서게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국은 수교 21주년을 맞는 짧은 기간 동안 한국의 제1무역 상대국이 됐으며 기업의 진출, 유학과 관광, 취업 등의 인적 교류, 드라마와 K-POP 등 대중문화 교류 등으로 상호관계의 폭과 깊이는 광속으로 달라지고 있다. 이러한 바탕 속에 이번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한·중 관계를 과거 1500년간 지속돼 왔던 전통적인 정상의 한·중 관계로 ‘복원’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2000여 년 전 통일제국 진(秦)과 한(漢)이 등장하면서 동북아는 동서쟁패의 구도가 형성됐다. 고조선은 한나라에 망했으며 수나라는 고구려를 치다 망했다.

당나라는 여러 번 고구려와의 싸움에서 패해 ‘저구려(低句麗)’라 부르며 상한 자존심을 달래던 끝에 신라와 손잡고 협공해 고구려를 꺾을 수 있었다. 한중의 동서세력이 서로 대결하던 패러다임이 7세기까지 이어졌다.

 문제는 그 후였다. 당나라는 고구려 백제 땅뿐 아니라 내친김에 신라까지 삼켜 동아시아에 일원적 제국질서를 세우고자 했다.

그러나 신라는 전 국민이 일치단결해 7년간 당나라에 대항했다. 매소성 전투, 기벌포 전투에서 연패한 당나라는 신라지배의 꿈을 접어야 했다. 이 사건은 동북아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이후 역사에서 중국 한족(漢族) 왕조와 한민족이 전쟁한 일이 없었다. 이전의 동서쟁패구도는 남북 쟁패구도로 페러다임이 전환됐다.

 고려와 거란, 고려와 여진, 고려와 몽골과의 전쟁, 병자호란이 모두 북방의 비한족 계통과의 전쟁이었으며 조선시대 임진왜란은 남방에서 쳐들어온 전쟁이었다.

반면, 통일신라와 당, 고려와 송, 조선과 명은 1300년 동안 평화롭게 동아시아 문화를 꽃피웠다. 동아시아 문화의 두 기둥이었다. 어느 한쪽이 위협받으면 다른 한쪽도 안전하지 않았다. 고려가 거란과 여진의 침략을 막아 냈을 때 송나라가 안전했고 조선이 임진왜란으로 전 국토가 유린되었을 때 원병을 보낸 명나라가 만주족에 망했다.

한국이 일본에 강점되자 곧 일본의 만주침략, 중국 내륙침략으로 이어졌다. 두 나라는 공동운명을 겪었다.

 중국의 6·25전쟁 참전은 1500년 한·중 관계에 예외적인 일이었다. 아편전쟁 이후 서구 제국에 대한 중국인의 피해의식과 경계심에 동서냉전, 스탈린의 중국 약화계략이 참전상황을 만들어냈다.

이제 중국은 G2국가로서 서구에 대한 의구심은 자신감으로 대체되고 있다. 북한의 악정과 핵개발은 중국과 북한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고하게 하고 반면 한국은 그 어떤 나라보다 근대사의 아픔을 공유하면서 평화와 번영의 동반자가 되고 있다.

이러한 때 박대통령이 파주에 있는 6·25당시의 중국군 유골을 반환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6·25전쟁으로 인한 비정상적인 양국관계의 상처를 정리하고 한 차원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는 상징적 조치를 취했다. 중국어를 구사하며 마음으로 다가가는 우아한 한국의 여성대통령이 15억 중국인들의 마음에 신뢰의 다리를 놓아 전통적인 한·중 관계를 복원하는 계기를 만든 것으로 생각한다.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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