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클릭해서 치킨 시키고 싶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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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8호 31면

한국인 친구와 동료들은 내게 한국에 살면서 가장 좋다고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묻곤 한다. 난 맛있는 음식, 훌륭한 대중교통, 활기차고 신나는 밤 문화, 끊임없는 한국의 발전상을 꼽는다. 칭찬을 듣고도 궁금한 점이 많은 이들은 두 번째로 묻는다. “한국에 살면서 불편한 점은 뭐냐”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늘 같다. 외국인은 온라인 쇼핑, 즉 전자상거래(e-commerce)를 즐길 수 없다는 점이다.

 사소한 불평 같지만 한편으론 인터넷 천국 한국에서 겪는 어려움이라고 하기엔 놀랍다. 한국은 전국 어디서나 전 세계적으로 가장 빠른 초고속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국가다. 인터넷을 통해 사실상 무엇이든 살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 사는 외국인, 특히 한국어를 잘 모르는 외국인에게는 이렇게 편리한 인터넷 세상이 굳게 닫혀 있다.

 한국 통계청에 따르면 소비자들이 온라인쇼핑으로 많이 소비하는 품목은 여행·패션·생활용품 등이다. 지하철 출퇴근길에도 스마트폰을 통해 손가락으로 몇 번만 클릭하면 영화표를 예매하고 여행상품을 예약할 수 있으며 맛있는 치킨까지 주문할 수 있다.

 이렇게 편리한 네트워크를 외국인이 사용할 수 없는 이유는 개인적 경험에 비춰볼 때 세 가지 장애물 때문이다. 언어와 신용카드, 그리고 외국인등록증 번호다.

 일부 주요 웹사이트는 영문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주요 항공사에선 외국어 홈페이지를 운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문 홈페이지는 한국어판에 비해 내용도 축소돼 있으며 제공되는 서비스 종류도 제한적이다. 홈페이지 영어 번역 수준 또한 홈페이지별로 다르다. 물론 공식 한국어 버전과 똑같은 수준의 영어 홈페이지를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적당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홈페이지 방문자들은 한국인일 것이고 영어 홈페이지를 만드는 데는 추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한국어를 수준급으로 구사하거나 한국인 친구의 도움을 받아 원하는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도 문제는 남아 있다. 결제 방법을 선택하는 단계에서 문제가 생긴다. 한국에 왔을 때 영국에서 발행된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고 무척 놀랐다. 마스터카드와 비자카드는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도 여행사 직원이 “영국 마스터카드로는 한국 항공사에서 결제가 불가능하다”고 했을 때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대사관에서도 나와 비슷한 사례를 겪고 당황했다는 동료가 많다. 어느 나라보다 앞선 통신망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에서 국제적으로 사용되는 신용카드를 못 쓴다니, 솔직히 이해가 잘 안 된다.

 해외에서 발행된 카드로 결제 가능한 웹사이트를 찾았다 해도 문제는 남아 있다. 주민등록번호를 통한 신분확인 시스템이다. 대부분 웹사이트에선 본인 인증을 위해 주민등록번호를 등록하도록 돼있다. 안타깝게도 외교관 신분증이나 외국인 등록증은 한국인 주민등록번호와는 숫자 배열 시스템이 다르다.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다 이 마지막 단계에서 포기해야만 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온라인 예매가 어렵기 때문에 저녁에 할리우드 영화를 보려면 아침부터 영화관에 달려가 줄을 서서 표를 예매해야 한다. 저녁에 집에서 피자를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싶어도 주민등록번호를 기입하지 않아도 되는, 몇 안 되는 웹사이트를 먼저 찾아야 한다.

 나는 빛의 속도에 가까운 한국의 인터넷과 전자상거래 시스템이 부럽다. 외국인인 나도 그런 편리함과 다양한 기회를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보스턴컨설팅그룹 보고서에 따르면 G20 국가 중 디지털 경제가 국내총생산(GDP)에 기여하는 비중이 가장 높은 국가는 영국이며 2위가 한국이다. 한국에 거주하는 145만 명의 외국인을 위해 좀 더 편리한 온라인 시스템을 도입한다면 한국이 조만간 영국을 따라잡고 1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콜린 그레이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법학을 전공한 후 기자로 일하다 외교관으로 변신했다. 스페인 등에서 근무하다 2011년 한국에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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