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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여유자금, 예금 → ELS·펀드로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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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기업의 여유자금 투자처가 은행 상품에서 증권 상품으로 옮겨 가고 있다. 본지가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들의 모임인 삼성증권 강남포럼과 분당포럼 회원 70명에게 설문한 결과다. 이들은 하반기 여유자금 투자처로 예금과 채권보다 주가연계증권(ELS)이나 자문상품 같은 증권형 상품을 더 많이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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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답자의 51.8%는 올 하반기 증권사 상품 투자를 고려 중이라고 대답했다. 은행 예금(26.5%)과 채권(16.9%)이라는 응답보다 많았다. 구체적으로 투자를 고려하는 상품은 ELS와 자문상품, 펀드, 주식 등이었다. 눈에 띄는 건 ELS 같은 구조화 상품에 대한 투자를 고려하고 있다는 응답(18.1%)이 채권에 투자하겠다는 응답(16.9%)보다 많았다는 것이다. 사재훈 삼성증권 강남사업본부장은 “원금보장형 ELS나 파생결합증권(DLS)이 특히 인기가 많다”고 귀띔했다. 채권 금리가 워낙 낮은 데다 금리 상승으로 채권 값이 떨어질 위험이 커진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원금보장형 ELS는 투자금 대부분을 채권에 편입해 원금을 보장하고 옵션을 통해 초과 수익을 달성하는 구조로, 계약 당시 설정한 조건을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원금 손실 우려가 없는 게 특징이다.

 실제로 원금보장형 ELS는 지난 2분기 3조7616억원 규모가 발행돼 전 분기 대비 6.4% 증가했다. 원금비보장형 ELS 발행량이 같은 기간 20% 이상 감소한 것과 대비된다. 박은주 한국투자증권 파생상품부 팀장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증권사만 발행하던 원금보장형 ELS를 29일부터 은행 역시 발행할 수 있게 됐다”며 “법인 자금을 놓고 은행과 증권사 간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CFO들은 이미 법인 자금의 많은 부분을 증권사 상품에 투자하고 있었다. 현재 법인 자금을 투자하고 있는 곳을 묻는 질문(복수응답)에 42.5%가 증권사가 판매하는 금융상품에 투자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채권까지 포함할 경우 증권사 상품 투자 비중은 60%를 넘는다. 사재훈 본부장은 “채권을 일정 기간 지난 후 다시 매입하는 조건으로 증권사에 매도해 단기 자금을 융통할 수 있는 환매조건부채권(RP)과 물가가 상승하는 만큼 금리도 따라 올라가는 물가연동채가 인기가 많다”고 덧붙였다.

 보수적 투자로 유명한 CFO들이 은행을 떠나 증권사 문을 두드리는 건 저금리 때문이다. 최근 소비자단체 컨슈머리서치가 국내 11개 주요 은행이 전국은행연합회에 등록한 1년 만기 정기예금을 조사한 결과 3%대 금리를 보장하는 제품은 하나도 없었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2%인 점을 감안하면 수익이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이번 설문에 응한 한 공기업의 직원 복지기금 운용 담당 임원은 “600억원 규모의 기금으로 직원 자녀 학자금 지원 등의 정책을 시행하는데 금리가 낮아지면서 은행만 믿고 있을 수 없게 됐다”며 “기금의 52%가량을 증권사 상품에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자 증권사들도 법인 자금 유치에 발 벗고 나섰다. 삼성증권은 40명이던 강남포럼 회원이 250명까지 늘자 서울 강북·강서법인센터와 경기도 분당법인센터에 같은 성격의 포럼을 출범시킨 데 이어 최근엔 공익 법인포럼까지 만들었다. 대학이나 재단 등으로 영업 대상을 넓힌 것이다. 신한금융투자·한국투자증권·대우증권 등도 자산운용전략 세미나 등 유사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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