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2500억원 날리고 … 5년 돌고 돌아 ‘도로 산업은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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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을 경쟁력 있는 대형 투자은행으로 키워 금융을 수출산업으로 만들겠다.”

 2008년 6월 금융위원회는 ‘산은 민영화 방안’을 발표했다. 산은을 대형 투자은행으로 만들고, 민영화로 확보한 자금은 중소기업 지원에 쓰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위해 1954년부터 산은이 맡아 왔던 정책금융 기능은 따로 떼내겠다고 했다. 당시는 정책금융 역할이 줄어든 산은이 시중은행과 이런 저런 마찰을 빚던 때였다. 정부는 이듬해 산은지주를 출범시키고 정책금융공사(정금공)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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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27일 금융위의 ‘산은-정금공 재통합’ 발표로 이 방안은 5년 만에 공식 폐기됐다. ‘유턴’의 이유로 정부는 상황변경론을 내세웠다. 금융위 고승범 사무처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로 시장 여건이 악화되면서 민영화 추진 동력이 크게 약화됐다”고 말했다. 어차피 산은을 시장에 내놔도 제값에 팔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는 또 “기업 구조조정, 시장 안정판으로서의 정책금융의 기능을 강화할 필요성이 커졌고, 산업은행을 적극 활용할 필요도 생겼다”고 밝혔다. 민영화를 바라보는 금융위의 입장도 5년 전과는 180도 바뀌었다. “산은이 민영화되면 풍부한 정책금융 역량이 상업적으로만 활용돼 국민 경제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돌아 돌아 ‘도로 산은’이 된 것이다. 남은 건 국민이 부담해야 할 청구서다. 그간 산은 민영화와 정금공의 인건비 등으로 투입된 비용만 최소 2500억원이다. 두 기관이 4년간 독자 생존을 모색하면서 늘어난 직원 수도 790여 명에 이른다. 쪼갰다 붙였다를 반복하며 생긴 비효율과 갈등에 따른 비용은 셈하기도 어렵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산은 민영화는 전 정부의 공약이었다. 밑그림을 그린 이는 산은 사외이사를 역임한 이창용 전 서울대 교수(현 아시아개발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뒤를 받친 건 곽승준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이었다. 이 교수가 금융위 부위원장이 되고, 산업은행장에 26년 만에 민간 출신인 민유성 행장이 취임하며 민영화는 착착 진행되는 듯했다.

 하지만 석 달 뒤인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상황이 꼬이기 시작했다. 금호아시아나 그룹 등 대기업들이 잇따라 부실화하자 주채권은행인 산은이 뒤치다꺼리를 도맡아야 했다. 정책금융 기능이 다시 중요해진 것이다. 게다가 시장 상황 악화로 상장 계획이 미뤄졌고, 이후 산은이 추진한 인수합병(M&A), 해외 진출도 번번이 좌초했다. 2011년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주 회장으로 투입돼 소매금융 강화와 기업공개를 추진했지만 역부족으로 끝났다.

 이 과정에서 정책금융을 전담한다던 정책금융공사가 기형적 구조를 갖게 됐다. 애초 산은 지주의 지분 49%를 정금공에 넘기고, 정금공은 이를 시장에 매각해 정책금융의 종잣돈으로 삼을 셈이었지만 민영화가 표류하면서 차질이 생겼다. 대신 수익이 나지 않는 공기업 주식과 부채가 잔뜩 산은에서 정금공으로 옮겨 갔다. 매년 이자 손실만 4000억~5000억원이 나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성격이 애매한 산은과 정금공은 같은 시장에서 마주쳤다. 온렌딩(중개기관을 통한 간접금융)을 제외한 정금공 업무의 63%가 산은과 중복되고, 해외 업무는 수출입은행과 겹쳤다. 금융위 관계자는 “정금공을 이대로 놔둘 수도 없고, 앞으로 부실화될 소지가 큰 기업들 대부분의 주채권은행이 산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민영화를 계속 추진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지적했다.

  상황변경론을 인정하더라도 이날 정부가 내놓은 ‘정책금융 역할 재정립 방안’은 ‘땜질 처방’을 넘어서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체 정책금융을 포괄하는 밑그림이 안 보이는 데다 수은과 무역보험 등의 업무 중복 문제, 정책금융 기관과 민간 금융사 간의 시장 마찰을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한 처방도 모호하다는 것이다. ‘해양금융종합센터(가칭)’도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 선박금융공사 부산 설립이 사실상 어려워지자 지역 민심을 달래기 위해 나온 궁여지책의 성격이 짙다. 금융연구원 김동환 선임연구위원은 “근본적인 문제는 비껴간 채 급한 처방만 한 셈”이라면서 “큰 그림 없이 갑작스럽게 개편안이 논의되면서 각 기관과 부처 이기주의를 극복하지 못했고, 결국 공은 다시 다음 정권으로 넘어가게 됐다”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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