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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외교, 부국강병 없으면 파탄”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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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중앙일보 박보균 대기자(왼쪽)와 김원모 단국대 교수. 최정동 기자

대한제국 고종의 마지막 승부수는 외교였다. 망국의 그림자가 짙어가던 1887년, 고종은 은밀한 어명을 내린다. 미국 수도 워싱턴DC에 대한제국 상주 공사관(지금의 대사관)을 개설하라는 명이었다. 1891년, 이채연 공사는 워싱턴DC 로건서클 15번지 빅토리아 양식의 적갈색 벽돌건물을 매입하고 옥상에 태극기를 게양했다.

 그러나 1910년 조선은 국권을 상실했고 일제는 이 건물을 5달러에 강탈했다. 기억에서 잊혀진 공사관을 되살린 건 전문가들의 끈질긴 의지였다. 김원모 단국대 교수는 1983년 워싱턴등기소에서 관련 기록을 찾아냈고 중앙일보 박보균 대기자는 『살아있는 미국 역사』 저술과 강연을 통해 매입 여론을 주도했다. 지난해 8월, 공사관은 102년 만에 고국 품으로 돌아왔다. 정부는 지난 20일 김 교수와 박 대기자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다. 김 교수와 박 대기자는 21일 대담을 갖고 대한제국 공사관 비극의 교훈을 되짚었다.

-고종이 미국에 공사관을 세운 배경은.
김원모 교수(이하 김)=“미국은 1882년 조선과 수호통상조약을 맺는 과정에서 조선을 청나라의 속국으로 대우하라는 중국의 영향력을 배제했다. 조약 체결을 기념하면서 미국은 자국의 독립전쟁을 상징한 노래 ‘양키 두들(Yankee Doodle)’을 연주했다. 조선을 신생 독립국으로 인정한 것이다.”

박보균 대기자(이하 박)=“미국 체스터 아서 대통령은 1883년 고종이 보낸 사절단에게 ‘미국은 다른 나라 영토를 점령, 지배할 의도가 없다’고 말했다. 한반도를 놓고 중·러·일이 벌이는 약육강식 구도에 시달리던 고종에게 이 말은 각별했다. 조·미 조약 1조 한문본엔 거중조정(居中調整), 영문본엔 ‘good offices’란 표현이 있다. 조선이 제3국과 분쟁이 있을 경우 미국이 조정하겠다는 외교문구였다. 이 또한 고종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러나 고종의 미국에 대한 마음은 짝사랑에 불과했다.”

김=“조선은 ‘거중조정’이라는 외교적 문구를 확대해석했다. 주한 미국공사 호러스 알렌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미국이 친러·반일 정책을 추진하면 한국을 일본 침략으로부터 지킬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루스벨트는 러시아의 남진을 막기 위해 친일·반러 정책을 폈다. 아무리 좋은 조약이라도 국력이 없으면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박=“공사관은 약소국 조선의 외교적 야망이다. 하지만 허약한 국력 탓에 자주외교가 좌절된 교훈이 담긴 곳이다. 고종은 ‘거중조정’이라는 외교적 언사를 지금의 한·미 상호방위조약급으로 과도하게 해석했다.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중국이 수천 년간 영향력을 행사해온 한반도에서 물러났다. 이어 러일전쟁에서도 승리한 일본은 미국과 ‘태프트·가쓰라’ 밀약, 제2차 영일동맹, 러시아와 포츠머스 조약을 맺어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확보한다. 부국강병 없는 고종의 자주외교 야망은 파탄 났다.”

-공사관이 남긴 비극의 교훈은.
김=“지금은 미·중이 이끄는 G2 시대다. 대만의 경우를 보자. 미국이 손을 뗀다면 대만은 당장 중국에 통일된다. 그러나 100여 년 전 대한제국과 달리 대만의 안보는 미국이 보장한다. 그 의미를 새겨야 한다. 그런 일은 없어야 하지만 제2의 태프트·가쓰라 밀약이 맺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박=“한국이 산업화·민주화에 성공했고 한·미동맹은 견고하다는 점은 100년 전과 다르다. 그러나 한반도의 지정학적 운명은 바뀌지 않는다. 한·중·일이 동시에 번영하고 있는 상황은 역사상 처음이다.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 세력의 절묘한 교차점이다. 주변국과 골고루 친해야 한다. 명분과 실리를 사안별로 배분하는 전략적 마인드가 우리 지도층, 국민 모두에게 필요하다.”

김=“일본 우익정권에 ‘눈에는 눈’이라는 식으로 감정적으로 접근하면 역효과다. 영토분쟁과 관련해선 일본에 역사적 명분이 없는 만큼 유연하고 의연한 대처가 필요하다.”

박=“독일은 전후 처리에서 ‘기억을 통한 청산’을 이룬 반면 일본은 망각의 길을 걷고 있다. 일본 정권에 각성을 촉구하면서도 경제교류에선 과도한 민족주의를 주입하지 않는 전략적 접근이 요구된다. 일본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과 과도하게 결속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김=“한반도 통일을 위해선 중국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독일 통일의 결정적 계기는 동독에서 소련군이 철수하면서 마련됐다. 중국은 북한에서 손을 뗄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목표는 중국의 마음을 돌려 통일에 협조하도록 하는 것이다. 통일은 중국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박=“청일전쟁 후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잃은 중국은 90년대 북핵 문제가 불거지면서 6자회담 의장국을 맡는 등 그 영향력을 빠른 속도로 회복했다. 북핵 문제를 중국에 과도하게 의존하면 우린 강 건너 불구경하듯 주도권을 잃게 된다. 북핵 문제는 같은 민족인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 진정한 자주의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 자주외교가 독불장군처럼 가자는 의미는 아니다. 그 출발점은 주변국과의 협력과 균형외교다. 이것이 고종의 공사관이 주는 시대적 메시지다.”

전수진 기자 sujin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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