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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으로] 우리가 몰랐던 개성공단 1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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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4개월째 막혔던 개성공단이 다시 열리고 있다. 개성공단 출입 차량은 북한이 발행한 임시 번호판을 달고 들어가야 한다(사진). 옥성석 나인모드 대표는 “양가 부모(남북 정부)의 소개로 만난 남남북녀(남한 기업과 북한 근로자)가 10년을 사귀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부모가 억지로 남녀를 갈라놓을 뻔한 셈”이라고 전했다. 입주 기업인 8명의 육성을 통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속사정을 살펴봤다.

2004년 개발 초기 개성공단 남북은 2003년 6월 개성공단 건설의 첫 삽을 떴다. 2004년 6월 15개 기업이 시범단지 입주 계약을 맺었고, 같은 해 12월 개성의 첫 생산품인 ‘통일냄비’는 서울의 백화점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숙자(50)씨는 요즘 개성공단에서 북한 근로자들을 만나는 꿈을 자주 꾼다. 이씨는 2006년 개성공단에 진출한 의류업체 만선코퍼레이션의 현지 법인장이다. 그의 꿈속에선 익숙한 얼굴의 북한 근로자들이 “법인장 선생, 왜 이제야 오셨시요”라며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지난 7년 동안 공장에서 한 솥의 국을 나눠 먹으며 가족 같은 정이 든 사람들이다. 귓가에는 작업복을 입은 북한 근로자들이 ‘드르륵, 드르륵’ 하며 재봉틀을 돌리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

 지난 13일 서울 양평동 본사 사무실에서 기자와 마주 앉은 이 법인장의 기억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는 “처음엔 모든 게 낯설고 힘들었다”고 말했다. 북한 근로자에게 “오늘 기분이 어떠냐”고 인사를 하면 무표정한 얼굴로 “일 없습네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속으로는 상당히 불쾌했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오해였다. ‘일 없다’는 말은 ‘괜찮다’는 뜻의 북한식 표현이었다.

 남북에서 쓰는 말뜻이 달라서 생긴 해프닝은 이뿐이 아니다. 공장에는 직장장이란 직함의 북한 근로자 대표가 있다. 보통 ‘대표 동지’라고 부른다. 어느 날 이 법인장이 사람을 시켜 “대표 동지한테 차 한 잔 하러 오시라고 해라”고 전했다. 한참을 기다렸는데 아무 소식이 없었다. 이번엔 “회의하러 오시라고 해라”고 불렀다. 그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세 번을 불렀는데 ‘대표 동지’는 오지 않았다. 막 화가 나서 말했다. “어떻게 법인장이 회의하자는데 얼굴도 안 비칠 수 있느냐.”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북한 근로자가 조언을 해줬다. “법인장 선생, 다음부터는 회의 말고 사업총화하자고 하시라요.” 이 법인장은 “그런 일이 있은 뒤로 직장장과 사업총화를 하면서 ‘직원들에게 교양사업을 잘해달라’고 당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2013년 현재 개성공단 지난 4월 북한이 근로자들을 철수시키기 전까지 개성공단에는 섬유·기계금속·전기전자 등 123개 업체에 5만3000명의 근로자가 일하고 있었다. 소방서·응급의료시설 등 부대시설도 마련됐다.

 입주 초기에 이 법인장을 가장 답답하게 한 것은 작업 중 실수를 해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근로자들의 태도였다. 사회주의 국가에 진출한 기업들이 흔히 겪는 일이라고 했다. 이 법인장은 “사람이니까 실수할 수도 있다. 다만 잘못을 고치려고 노력해야 발전이 있다”고 근로자들을 설득하려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한 그는 입주 한 달 만에 북한의 개성공단 관리기구인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을 찾아갔다. 그리고 북한 관리들에게 “나는 기술을 가르쳐주러 온 사람이지 일로 부닥치려고 온 사람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선 기술 지도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상황의 심각성을 전했다. 그러면서 “내 기술로는 남한에서도 얼마든지 잘 먹고 잘살 수 있다. 계속 이런 식이라면 여기서 고생할 필요 없이 짐 싸서 내려가겠다”고 당당하게 입장을 밝혔다. 며칠 뒤 북한 총국에서 근로자들에게 특별 지침을 내렸다. ‘이 법인장은 훌륭한 사람이니 기술 지도를 잘 받도록 하라’. 그때부터 그가 어떤 일을 지적하면 북한 근로자들의 입에서 “잘못했습니다”란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법인장은 “초기엔 어려움이 많았지만 진심을 보여주니 대부분 잘 따라왔다”며 “이제는 900여 명의 북한 근로자와 가족처럼 잘 지낸다”고 했다. 지난해 말 그는 공단 안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었다. 그 소식을 들은 북한 근로자들은 잔뜩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에게 달려왔다고 한다. “많이 다쳤으면 피라도 뽑으려고 했시요.” 헌혈이 필요하면 기꺼이 나서겠다는 뜻이었다. 이 법인장은 “그 말을 듣고 눈물이 핑 돌았다”며 “북한 근로자들이 남한 사람들보다 정이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재가동 준비 한 달 이상 걸리는 곳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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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성공단의 문을 다시 열기 위한 기업인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지난 22일 1차로 전자·기계업종의 입주 기업 43개 사와 한국전력·KT 등 유관기관 관계자 267명이 개성공단에 가서 설비를 점검하고 돌아왔다. 23일에도 섬유업체 관계자 등 306명이 개성에 다녀왔다. 이 법인장은 “현장에서 설비를 둘러보고 나니 불안한 마음이 싹 가셨다”며 “열흘에서 보름 정도면 변압기를 수리하고 재가동을 위한 복구를 마칠 수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김학권 재영솔루텍 대표는 “일부 부품은 부식이 심해 교환이 필요하지만 전반적으로 설비 상태가 양호했다”며 “업체에 따라 하루 이틀만 준비해도 재가동이 가능한 곳이 있을 것이고 한 달 이상 걸리는 곳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에서 일부 가능한 업체라도 조속히 생산 활동을 재개할 수 있도록 협의해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 법인장은 “공단 정상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거래처에서 주문을 따내는 것”이라며 “계절을 앞서 가는 선주문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패션업계에서 8월 말이면 내년치 주문을 따내기에도 이미 늦은 시기”이라고 말했다. 전자·기계 부품업체인 에스제이테크의 유창근 대표는 “4개월 가동 중단의 상처를 하루아침에 회복하기는 불가능하다”며 “그동안 바이어들이 많이 떠났고 이제 돌아온다고 해도 과거와 같이 개성 제품을 믿어주진 않을 것 같다”고 호소했다.

정치 외풍에 억류, 통행 차단 우여곡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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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토지와 노동력을 결합한 개성공단은 올해로 열 돌을 맞았다. 시범단지 공사의 첫 삽을 뜨는 착공식이 열린 2003년 6월 30일이 개성공단의 생일인 셈이다. 2004년 12월 개성 진출 1호 기업인 리빙아트(현 소노코쿠진웨어)가 만든 ‘통일냄비’는 서울 롯데백화점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1000세트가 1시간 만에 다 팔려나가기도 했다. 그 후 개성공단 1단계 지구에 남한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2005년 18개였던 개성 입주기업은 4년 만에 100개를 넘어섰고 2011년 123개까지 늘었다.

 개성공단을 둘러싼 정치적인 우여곡절도 많았다. 2008년 12월 북한은 개성공단 상주 허용 인원을 880명으로 축소하고 통행 시간을 제한했다. 탈북자단체가 대북 전단을 살포했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2009년에는 북한이 한·미 군사훈련을 이유로 세 차례에 걸쳐 개성공단 육로 통행을 차단하고 현대아산 근로자를 137일 동안 억류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2010년 5월 정부는 천안함 침몰 사태에 따른 대응책으로 개성공단 신규 진출과 투자 확대를 금지하고 체류 인원을 축소하는 5·24 조치를 꺼내 들었다.

 그럼에도 지난 4월 북한이 근로자들을 일방적으로 철수시키기 전까지 개성공단은 온갖 정치적인 외풍을 버텨내며 단 한 번도 공장 가동을 멈추지 않았다. 개성공단의 연간 생산액은 2005년 1500만 달러에서 지난해에는 4억7000만 달러로 증가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9억7000만 달러에 달했던 남북 교역에서 개성공단은 절대적 비중(99.5%)을 차지했다. 지난 4월 현재 개성에는 123개 남한 입주업체에 5만3000여 명의 북한 근로자가 일하고 있었다.

1 개성공단 북한 근로자들의 오전 출근 모습. 2 공장에서 작업 중인 근로자들. 입주기업 중엔 섬유업체가 72개로 가장 많다. 3 신발업체인 삼덕통상의 근로자들이 단체로 체조를 하고 있다. 4 근로자들 의 자전거 앞 바구니마다 둥근 번호판이 붙어 있다. [사진 통일부·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개성공단에서 셔츠류를 생산하는 나인모드의 옥성석 대표는 “남남북녀라는 말도 있지만 개성공단의 남한 기업과 북한 근로자는 결혼을 앞둔 남녀 문제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부모(남북 정부)의 소개로 남자(남한 기업)와 여자(북한 근로자)가 10년을 사귀었다. 서로 마음에 들어 결혼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이제 와서 부모가 억지로 남녀를 갈라놓을 뻔했다”는 얘기다. 옥 대표는 “결혼을 포기(공장 폐쇄)하고 혼자 늙을 게 아니라면 다른 여자(중국·베트남 등 해외 공장)를 만나야 하는데 그만큼 시간과 돈이 많이 든다”며 “다른 여자는 말도 다르고 역사·문화도 다르기 때문에 결혼해서 잘살 거란 보장도 없다”고 지적했다.

싼 인건비와 근로자들의 손재주는 입주 기업인들이 이구동성으로 꼽는 개성의 장점이다. 개성공단기업협회장인 한재권 서도산업 대표는 “개성공단만큼 인건비가 저렴하면서 근로자들의 손재주가 뛰어나고 신속한 물류 수송을 위한 입지 조건이 좋은 곳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대구상공회의소 부회장도 맡고 있는 그는 “개성공단을 통해 국내 원부자재 산업이 활성화하면 대구의 섬유산업이 되살아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며 “개성 근로자들의 손재주를 잘 살리면 루이뷔통·샤넬 같은 세계적인 명품도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숙녀복 전문업체인 오오엔육육닷컴의 강창범 대표는 “당장 명품까지는 아니라도 개성 제품으로 유니클로·자라·H&M 같은 해외 패션 브랜드와 충분히 경쟁이 가능하다”며 “개성의 공장만 잘 돌아간다면 그럴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성현상 만선 대표는 “섬유의 원부자재 생산은 대구에서, 임가공은 개성에서 하는 분업이 지금보다 훨씬 대규모로 이뤄지면 인구 250만 명의 대구 전체가 먹고살 거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산업은행 경제연구소가 개성에 30억원 이상 투자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대상 기업의 100%가 ‘저렴한 노동력 활용’을 개성 진출 이유로 꼽았다. 남북이 합의한 개성공단의 최저임금은 주 48시간 근무에 월 60.775달러(약 6만8000원). 남한의 이틀치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매년 임금 인상률은 5% 이내로 제한되고 3개월의 견습 기간에는 최저임금의 70%가 적용된다. 중소기업연구원(중기연)에 따르면 초과근무수당 등을 포함한 개성공단 근로자의 실질 임금은 월 110달러 수준이고, 기업들은 사회보험료와 복리후생비 등을 합쳐 근로자 1인당 월 130~170달러를 부담하고 있다. 개성공단의 임금 수준은 중국 칭다오(靑島)공단의 3분의 1, 베트남 탄투언공단의 3분의 2 정도라는 게 현대경제연구원의 분석이다.

 다만 북한 근로자들은 남한 기업이 주는 달러를 구경도 하지 못한다. 남북 합의에 따라 근로자들은 달러 대신 북한 화폐와 현물로 급여를 받도록 돼 있다.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이 거둬들이는 달러는 연간 8600만 달러(이 중 임금은 8400만 달러)에 달한다. 한국은행이 조사한 지난해 북한의 대외무역 규모(68억1000만 달러, 남북 교역 제외)와 비교할 때 약 1.3%에 해당한다.

 그렇다고 개성 진출 기업이 저임금 혜택을 고스란히 챙기기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입주 기업인들의 설명이다. 성 대표는 “인건비가 싼 공장에 높은 단가를 쳐줄 바이어는 전 세계에 단 한 명도 없다”며 “바이어는 주문을 내기 전에 반드시 원가 분석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단가가 낮아지면 소비자가 양질의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어 결국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며 “이런 시장의 논리를 무시하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답답함을 느낀다”고 하소연했다.

한번 고용하면 해고하기 어려워

 정치적 불확실성을 제외하면 개성 진출 기업들의 최대 고민은 인력 부족이다. 기업들은 북한 근로자를 한 명이라도 더 쓰고 싶어 하는데 공급이 크게 부족하다. 중기연에 따르면 123개 개성 입주 업체들은 모두 합쳐 1만5000명의 인력을 더 요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입주업체 한 곳당 평균 100명 이상의 인력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언젠가 개성공단 1단계 개발(330만㎡, 100만 평)이 완료된다면 모두 10만7000명의 근로자가 더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개성시와 인근 3개 군(장풍·개풍·판문군)에서 최대로 공급 가능한 근로자는 5만3000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공단 가동 중단 직전 근무했던 인원수와 같다. 다른 지역에서 사람을 데려오지 않는다면 개성 인근 지역에선 추가로 근로자를 공급할 여력이 없다는 계산이다. 북한 근로자들의 출퇴근 교통수단은 통근버스가 유일하기 때문에 원거리 출퇴근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아침에 통근버스를 놓쳐서 결근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한 회장은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남북에서 모두 결단이 필요하다”며 “남한은 과거에 약속했다가 무산됐던 합숙소(기숙사) 건설을 재추진하고, 북한은 필요하다면 젊은 군인들을 제대시켜서라도 인력을 차질 없이 공급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개성공단을 방문했던 이근면 아주대 경영대학원 특임교수는 “아직도 공단 곳곳에 빈터가 많은데 가장 큰 이유는 인력 부족”이라며 “개성에 들어간 기업들이 대부분 노동집약적 기업이라 공장을 더 확장하려고 해도 인력이 확보되지 않으면 못한다”고 지적했다.

 근로자의 채용과 해고가 자유롭지 않은 것은 물론 교육훈련과 작업장 배치 등 각종 인사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이 교수는 “개성에선 근로자의 지휘 감독권이 기업에 없고 북한의 근로자 대표에게 있다”며 “따라서 기업이 직접 근로자를 대상으로 교육훈련을 시키고 싶어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일을 잘하면 성과급이나 인센티브를 줘야 생산성을 더 높일 수 있는데 그것도 못한다”고 설명했다.

 역설적으로 북한의 경직된 인력 운영이 기업에 좋은 점도 있다고 한다. 근로자의 이동이 자유롭지 않아서 한 번 고용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만두지 않고 계속 근무하기 때문이다. 옥 대표는 “7년 전 개성에 갔을 때 17세였던 여성 근로자가 이제는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기 엄마가 됐다”며 “북한 근로자가 250명 정도인데 처음엔 서먹했지만 이제는 눈만 마주쳐도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고 전했다.

 남한 기업들이 현금으로 성과급을 주지 못하는 대신 고안한 방법이 초코파이 지급이다. 유 대표는 “성과급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경계선”이라며 “그 경계선을 넘지 않도록 운영의 묘를 살린 것이 초코파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초코파이를 주면 일의 능률이 높아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며 “처음엔 간식이었던 초코파이를 개성 기업들이 수당 개념으로 널리 활용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성 대표는 “하루에 기본으로 2개씩 주고 연장근무를 하면 2개 더, 목표량을 달성하면 2개 더 주는 식으로 하고 있다”며 “열심히 하는 근로자는 하루에 최대 8개까지 초코파이를 받아 갈 수 있다. 다른 입주 업체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초코파이를 주는 것으로 안다”고 소개했다. 이 교수는 “초코파이는 간식으로 먹을 수도 있지만 유통기한이 긴 편이라 시장에 내다 팔아 현금화하기도 쉽다”며 “드물겠지만 초코파이로 죽을 끓여 먹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인사권 제한은 급식에도 영향을 준다. 남한 기업이 북한 근로자에게 밥을 주는 것은 금지돼 있다. 김치 같은 밑반찬도 안 된다고 한다. 북한 근로자들은 대부분 도시락을 싸 온다. 대신 공장 식당에선 국을 끓여 나눠 먹는다. 한솥밥이 아니라 한솥국을 먹는 셈이다. 옥 대표는 “우리가 밥을 준다고 해도 북한 사람들은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근로자를 잘 먹이는 것은 생산성 향상과도 관련이 깊은데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예민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개성 진출 기업인들은 정부의 경제협력사업보험(경협보험)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요점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경협보험금을 받는 것과 개성에서 철수하는 것은 별개 문제라는 설명이다. 한 회장은 “대다수 입주 기업들은 경협보험금을 일종의 정상화 지원자금으로 보고 있다”며 “일단 급한 불을 끄는 운영자금으로 쓰고 나중에 갚으면 된다는 견해가 많다”고 전했다. 그는 “만일 입주 예정 업체로 선정됐으나 아직 진출하지 못한 기업이라면 보험금을 받고 정리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며 “하지만 기존의 123개 입주업체 중 아직까지 포기 의사를 밝힌 곳은 없다”고 강조했다.

 둘째는 보험금의 한도가 충분치 않아 이대로 철수할 경우 기업들도 상당한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성 대표는 “개성에 100억~200억원을 투자한 기업도 많지만 경협보험의 최고 한도는 70억원에 불과하다”며 “그나마 보험 약관상 여러 가지 명목으로 한도가 줄어들도록 설계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 회사는 120억원을 투자했지만 보험금은 최대 43억원밖에 받지 못한다”며 “개성에서 꾸준히 이익을 냈다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 한도가 줄어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협보험을 취급하는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개성공단 가동 중단으로 지금까지 모두 13개 업체에 429억원의 보험금이 지급됐다. 업체당 평균 보험금은 33억원이다. 중기연 설문조사 결과 73.8%의 개성 진출 기업이 “경협보험금의 한도를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개성에서 원자재 반출이나 납품 불이행의 위험을 보장하는 교역보험이 도입됐지만 한도는 10억원에 불과하다는 것도 기업들의 불만이다.

 남북협력기금 등을 통한 정부의 자금 대출에 대해서도 기업들의 불만이 큰 편이다. 중기연에 따르면 정부 지원에 만족한다는 기업은 2.5%에 불과했고 60.5%는 ‘불만족’, 37%는 ‘보통’이라고 답했다. 성 대표는 “외부에 알려진 것과 달리 개성 진출 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 대출은 국내에서 공장을 짓는 것보다 훨씬 못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만일 국내 산업단지에 공장을 세우면 중소기업진흥공단 등에서 투자액의 60~70%까지 정책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다”며 “하지만 개성에 대해선 국내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하고도 투자액의 3분의 1밖에 대출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주정완·이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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