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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어딜 보고 의견 조율하는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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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홍준
논설위원

특정 문제를 놓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으는 정책토론회엔 일정한 형식이 있다. 발제자와 토론자의 견제, 토론자 간 아슬아슬한 균형이다. 토론자들은 찬·반·중립으로 구성돼 있다. 대체로 토론 시간은 한 사람당 5분 정도 되며, 가끔 토론회에 찾아온 일반 참석자에게도 발언 기회를 준다. 시간에 쫓겨 심도 있는 토론은 대부분 어렵다. 참석자가 각 분야의 전체 의견을 대표한다고 보기 어려울 때도 있다. 그래도 정부의 정책담당자들은 안 하는 거보다는 낫다고 느낀다. 최소한 의견 수렴은 한 게 아니냐는 안도감은 준다.

 박근혜정부의 교육부는 무슨 배짱인지 이마저도 하지 않는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지난 12일 역사교육 강화 방안과 관련해 국민 여론을 수렴한 뒤 2017학년도 대입제도 개선 발표 때 함께 내놓는다고 합의했다. 그런데 어찌된 건지 발표 날짜만 덩그러니 나왔다. 원래는 지난 21일이었다. 이어 오는 27일로 순연됐다. 교육부 관계자는 “출입 기자들의 요청 때문”이라고 했고, 출입 기자들은 “발표하기로 한 전날까지도 자료 한 쪽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정 협의가 있었던 지난 12일부터 9일간 무슨 공청회가 열렸다는 얘긴 들어보지 못했다. 교육부 측이 기자들에게 2017학년도 대입에 관한 개략적인 내용을 구두로 브리핑했다는 소식만 들었다.

 김무성 한국교총 대변인은 그 내용이 궁금해 지난 20일 정부청사 기자실을 찾아갔다. 그는 “기자들마다 얘기가 조금씩 달라 그 내용이 뭔지 잘 파악이 안 된다”고 답답해했다. 물론 교육부가 교원단체에 반드시 정책을 설명해야 할 법적 의무는 없다. 하지만 2017학년도 대입만 하더라도 현재 중3 64만 명에게 해당된다. 이들뿐만 아니라 중2 이하 학생·학부모도 관심이 있을 내용이고, 그리고 현재 고교 교사들도 앞으로 대입이 어떻게 변하는지 궁금해할 내용이기도 하다.

이성권 서울진학지도협의회 회장(대진고 교사)은 자신의 페북(페이스북)에 ‘대입 방안 연기됐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렸다. 그는 “대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교육부는 현장의 사정이 어떤지 따지지도 묻지도 않는다”고 썼다.

 이처럼 교육부가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느라 뛰어다니는 거 같지는 않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답이 다 나와 있는 문제를 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답이란 청와대 또는 대통령의 뜻으로 풀이해도 좋다. 예를 들어 ‘증세 없는 복지’가 뜻이면 공무원은 고통 없이 거위 깃털 뽑는 아주 창의적인 방안만 고민하면 된다. 연소득 3450만원을 넘는 샐러리맨이 열 받아도 세목이 새로 추가되거나 세율이 오르는 게 아니니 증세가 아니라는 논리만 개발하면 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공약으로 표현되는 뜻을 공무원이 따르는 건 잘못이 전혀 아니다. 하지만 잘못이 있다면 공무원들이 쳐다보고 있는 방향이다. 현재 교육부는 의견 수렴을 청와대 또는 국회와의 의견 조율로 해석하는 것 같다. 그나마 각계 다양한 사람들이 내놓는 의견 조율이라면 환영한다. 그런데 의견 조율의 방향이 학교나 현장으로 향해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명박정부 때와 달라진 게 없는 건 의견 수렴 또는 조율 방식에 있다.

 정책토론회를 열고, 의견을 듣는 방식이 심리적 안도감을 줄 뿐 시간과 돈만 드는 등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면 다른 대안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페북 페이지 ‘2017 대입’을 만들거나 카톡방 ‘2017’을 여는 건 어떨까. 실명을 달고 활동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간에선 악과 떼 쓰는 목소리만 있는 게 아니다. 생생한 현장 얘기를 들을 수 있다. 인터넷 사이트를 만드는 데 돈을 쓸 필요도 없고, 보안이 뚫리는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핏대 세우는 사람들의 목소리까지 들어봐야 피곤만 하지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안이한 태도가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혹시 정책담당자들에게 이런 게 있다면 이젠 저 멀리 던져주길 바란다. 교사나 학부모들의 얘기 속엔 생각 못한 답이 있을 수 있다. 모두가 미디어가 될 수 있는 시대 아닌가. 현장의 힘을 믿어주길 바란다.

강홍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