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10)|연극없는 한국의 무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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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무대를 차지하는 배우는 더러있지만 무대에 군림하는 배우는 얼마없다. 관중을 잡는 배우는 더러있지만 관중을 내것으로 삼는 배우는 얼마없다. 장면을 환하게 해주는 배우는 더러있지만 장면에다 점화하는 배우는 얼마없다.』 이말은 근자에 어느 외지에 실린 글의 인용이다.
연극이 진실로 연극답다고 하는것은 무대위에 배우가 움직이니까 되는 일이 아니다. 그럴싸하게 흉내를 내니까 연극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입고 나온 옷이 화려하다고해서 연극이 되는 것도 아니다. 격정을 가장하여 노호하거나 관중을 웃겨주겠다고 무턱대고 표정과 대사를 과장해서 연극이 되는것도 아니다. 스타·밸류가 있다고해서 연극이 또한 되는것도 아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나 소박한 생각을 연극에 대해서 해왔고 그러기 때문에 관객을 무조건 올리거나 웃기게 해주는데 열중하면 연극이 되는 줄로 알고 왔다. 또한 반대로 연극은 어찌됐건 작품이 무엇인가 의미있는 듯이 보이기만하면 연극은 성립되는 것으로 알고왔다.
그래서 배우는 언제나 아마추어적인 몸짓과 발성으로 이럭저럭 연극을 이끌어 나갈 수 있었고 연출자는 계산속이 없이 연습의 뒤만 쫓고있는 꼴이 되고 말았다.
거기다 언제부터인가 연습을 하지않고서도 무대위에 설수 있고 대사만 외우면 두시간 정도는 지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엉뚱한 그리고 불행스런 습성이 고질화되어버렸다.
그리고 연극이 잘 되었거나 못되었거나 간에 올바른 평가와 반성을 해보는 일이 없어져 버렸다. 기껏 이야기가 나온다면 매표구의 수입상황이나 아니면 피아르실적이 고작이다. 그나마 몇 안되는 연기의 주력부대는 TV로 이동해버렸고 연출자 역시 다른 곳에서 바쁘거나 아니면 무력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무대를 군림하기는커녕 그 일부를 차지할 줄 아는 배우가 몇이며, 장면에 점화는 커녕 그것을 의미하게나마 밝혀주는 연출자가 몇이나 있는가.
무대란 원래 닥쳐올 것에 대한 기대에 가슴을 설레이게 해주고 몰아치는 걱정에 마음둘바를 모르게 해주고 잔잔한 웃음이일면 파도처럼 번져가는 그런 곳이다.
거기에는 꿈이있고 인간의 진실에 대한 해명이있고, 그리고 언제나 무엇인가 느끼고 생각게 해주는 것이 있는 법이다.
무대란 현실을 직접 묘사하는 일은 않지만 언제나 현실사회에 대해 그것이 지닌 모든 모순과 고뇌에 대해 반영을 하는 곳이다. 그리고 무대란 인간으로 하여금 역사를 반성하고 영원에 대해 도전케 해줄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고도로 숙련된 연기자가 있어야하고 일체의 앙상블이 조금도 소홀함이 없이 이뤄지는 용의 주도함이 있어야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에게 진실을 던져주는 작품이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지금의 한국연극은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더욱 곤란한 점은 도무지 갖추려드는 징조가 보이지 않는다는데 있다. 정열이 없는 것이다.
요즘 필자는 연극을 보러가는 것에 싫증이 난다.
그 2시간 정도를 앉아있는데도 큰 부담을 느낀다. 그리고는 어쩌다 구경하는 가면극의 춤이나 판소리의 소리가운데 훨씬 더 많은 연극을 찾아내고 있다. 이말은 단순한 연극성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현대연극이 연극으로부터 줄곧 자기소외하는데 대한 하나의 반발일는지도 모르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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