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먼저' 북 요구는 거부 … 관광 재개 회담 자체는 수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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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0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당국회담에 대한 입장을 정해 북한에 통보했다. 오는 23일 추석(9월 19일)을 계기로 한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실무회담을 하고,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는 한 달여 뒤인 다음달 25일 논의하는 방안이다. 북한이 지난 18일 이산상봉 회담에 앞서 금강산 관광 재개를 논의하자고 제안해오자 정부는 한때 고민에 빠졌다. 이산상봉과 개성공단 정상화에 집중하려던 찰나에 북한이 금강산 문제까지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금강산 관광 논의는 거부할 것이란 관측이 있었지만 결국 장고 끝에 ‘금강산은 상봉 이후’라는 결론을 냈다.

 문제는 이르면 21일 나올 북한의 반응이다. 남측으로부터 금강산 관광 회담 개최 동의를 받았다는 점에 만족해 상봉에 호응해 온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관광 재개에 집착해 상봉 판까지 깨버리면 남북관계 전반에 먹구름이 낄 수 있다. 양측은 23일 개최에 합의한 이산상봉 회담의 장소를 놓고도 ‘판문점 남측 지역’(남)과 ‘금강산’(북)으로 맞서 있다.

 정부 일각에서 금강산 관광 재개에 부정적인 기류가 있는 것도 넘어야 할 산이다. 20일에는 관광 대가(입산료) 지불을 둘러싼 대북 제재 위반 논란이 불거졌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향후 북한과의 금강산 관광 관련 협의를 추진해 나가는 과정에서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과의 상충 여부 등을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런 발언은 지난 3월 만장일치로 채택된 안보리 결의 제2094호의 11항을 염두에 둔 것이다. 안보리 결의는 북핵·탄도미사일과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 등에 대량 현금을 의미하는 ‘벌크캐시(bulk cash)’가 흘러 들어가는 걸 금지하고 있다. 다른 외교안보라인 당국자는 “그 전에는 남북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양해가 돼왔던 부분인데 대북 제재가 더 강해졌고 벌크캐시도 들어갔기 때문에 금강산 관광이랑 맞물린 게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1998년 11월 시작된 금강산 관광은 2008년 7월 북한 경비병에 의한 관광객 피격사망 때까지 195만여 명이 다녀왔고, 관광 대가로 4억8700만 달러가 북한 계좌로 송금됐다.

 이날 북한은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한·미 합동 군사연습(19~30일)과 관련해 대남비난의 포문을 열었다. 조국평화통일위 대변인은 담화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19일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대북 대비태세 완비를 강조한 점을 거론하며 “대화 상대방을 모독하는 용납 못할 도발”이라고 비난했다.

 다만 조평통은 실명은 거론 않은 채 ‘남조선 당국자’로 박 대통령을 지칭했고, 분량도 A4 한 쪽으로 짧아 남북관계의 유화적 흐름을 깨려는 의도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영종·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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