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비자금 차명계좌 3만 개 추정 … 금융 전문가 도움 없이는 불가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3면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90년대 초반 약 3만 개에 이르는 차명계좌를 이용해 치밀한 방식으로 비자금을 세탁한 것으로 나타났다.

 1995~96년 서울지검에 설치됐던 12·12 및 5·18 특별수사본부 관계자들은 18일 “전 전 대통령이 퇴임 직후부터 2000억원대 비자금을 1억~3억원 단위로 쪼개 평균 2개월마다 다른 차명계좌로 옮긴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당시 전 전 대통령 측이 매년 4200~4800개씩 차명계좌를 만들어 돈세탁에 동원한 것으로 파악했다. 이렇게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까지 8년 동안 자금세탁이 이뤄진 만큼 약 3만 개의 계좌가 동원됐을 것으로 검찰은 추정했다. 수사팀 관계자는 “1개의 차명계좌를 밝혀내는 데 최소한 5일이 걸릴 정도로 자금 세탁 과정이 복잡했다”며 “금융 전문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팀은 당시 엄청난 수의 계좌를 추적했지만 결국 정확한 사용처를 규명하지 못한 채 수사를 중단했다. 그러나 전 전 대통령의 돈세탁은 그 이후에도 계속됐다고 한다. 97년 2205억원을 추징하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왔지만 그해 말 김영삼 전 대통령이 사면해주자 추징금을 내지 않으려고 돈세탁에 더욱 열을 올렸다는 것이다. 다른 수사팀 관계자는 “2004년 전 전 대통령 차남 재용(49)씨에게 넘어간 사실이 확인된 160억원대 비자금도 이런 과정을 거쳤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두환 전 대통령 미납추징금 환수팀은 재용씨가 서울 이태원 소재 고급빌라 4채를 구입하는 데 사채업자와 노숙자 명의의 차명계좌를 통해 세탁된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유입된 사실을 확인하기도 했다.

 한편 전 전 대통령 처남 이창석(62)씨의 구속영장실질심사는 19일 오전 10시30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수사팀 관계자는 “영장이 발부되면 이씨를 상대로 오산 땅 구입경위와 분배 과정을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가영·이동현 기자

관련기사
▶ '전두환 처남' 이창석 영장심사 묵묵부답 일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