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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소련서 친미 전향 후 24년간 21조원 군사원조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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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억5000만 달러(약 1조7000억원). 미국이 매년 이집트에 지원해오던 돈이다. 이 액수는 이스라엘과 함께 중동의 핵심 동맹국인 이집트에 대한 미국의 관심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이 이집트에 이 같은 거액을 지원한 건 언제부터일까. 기원을 찾으려면 197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미국과 이집트 군부의 ‘밀월’이 시작된 때다.

당시 이집트에선 친소련 노선을 걷던 가말 압둘 나세르가 대통령에서 물러나고 안와르 사다트가 집권했다. 사다트는 친미 노선을 택했다.

그는 76년 수에즈 운하에서 소련 기술자들을 추방했다. 79년에는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었다. 미국은 이때부터 이집트에 군사·경제 원조를 하기 시작했다. 79년부터 2003년까지 미국이 이집트에 한 군사원조 규모는 190억 달러(21조원). 경제원조 규모도 300억 달러(33조원)에 이른다.

미국과 이집트의 관계는 2001년 9·11 테러범 상당수가 이집트 출신인 게 밝혀진 뒤에도 이어졌다. 2002년 무함마드 호스니 무바라크가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반대해 사이가 벌어지긴 했다. 하지만 2009년에도 미국은 13억 달러의 군사 원조를 했다. 2011년 이집트가 서방 비정부기구(NGO)들을 핍박했을 때도 미국은 원조를 중단하지 않았다.

이는 모두 전략적 요충지이자, 이스라엘과 다른 아랍 국가 간의 중재 역할을 하는 이집트를 잃는 걸 미국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젠 사키 미 국무부 대변인이 17일 CNN에 출연해 “이집트에 대한 지원은 미국에 전략적으로 중요하다”고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집트 군부 지도자 중엔 미국 군사학교 출신도 적지 않다. 미국 육군대학원에서 수학한 현 군부 핵심 압둘 파타 알시시 국방장관이 대표적이다.

지난 7월 무함마드 무르시가 군부에 의해 축출됐는데도 오바마 정부는 군부 쿠데타로 지칭하길 회피했다. 미국 법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군사적으로 전복한 국가에 원조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군부의 대통령 권한 박탈을 쿠데타로 보면 원조를 중단해야 한다.

그러나 이집트 군부의 시위 강경 진압으로6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자 미국도 고심하고 있다. 미 정부는 16일 “모든 형태의 이집트 지원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미국의 지원 중단 카드가 이집트 군부를 압박해 유혈 충돌을 해결하는 단서가 될지에 관심이 쏠린다. 중동 전문가인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이 지원을 끊는 게 사태 해결의 레버리지(지렛대)가 될 것”이라며 지원 중단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했다.

다른 쪽에선 양국의 오랜 밀월 관계 때문에 지원이 중단되지 않을 거라 전망한다. 박재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동 담당 연구원은 “미국이 정세적으로 중요한 이집트에 대한 원조를 줄일 수는 있겠지만 아예 끊지는 않을 것”이라고 봤다. 미국의 원조 중단 여부는 이집트의 향후 운명을 가를 결정적 변수여서 오바마의 선택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중앙선데이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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