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박주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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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박주영(左), 홍명보(右)

슈팅 수 55개. 그러나 득점은 단 한 골. 홍명보(44) 감독 부임 이후 치른 네 번의 A매치(3무1패)에서 축구 대표팀이 보여준 씁쓸한 자화상이다. 골잡이들의 거듭된 부진에 지친 홍 감독의 시선은 지난해 런던 올림픽 동메달 주역 박주영(28·아스널)을 향하고 있다.

 14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페루와의 평가전(0-0무)에서 한국 대표팀은 고질적인 골 결정력 부족을 또 한 번 드러냈다. 전·후반 15개의 슈팅을 쏘아대며 흐름을 지배하고도 골 문은 열지 못했다.

 국내파 대상 실험을 마친 홍 감독은 다음 달 두 차례(6일·10일) A매치 평가전에서는 유럽파 멤버들도 함께 테스트한다. 가장 뜨거운 시선을 받는 선수는 역시 박주영이다. 박주영은 스위칭(주위 동료와 자리를 바꾸는 플레이), 공간 침투, 전방 압박 등 홍 감독이 최전방 공격수에게 요구하는 움직임에 두루 능하다. 지난해 일본과의 런던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2-0승)에서 선제골을 터뜨리는 등 승부사 기질도 있다.

 대표팀 내 존재감 또한 확실하다. 홍 감독은 지난해 초 병역 면탈 의혹에 시달리던 박주영의 기자회견장에 동석해 “박주영이 군대를 가지 않으면 내가 대신 가겠다”는 발언으로 힘을 실어줬다. 이를 통해 박주영을 런던 올림픽 최종 엔트리에 포함시켰다. 2년 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박주영을 와일드카드로 활용했다. 경기력은 물론, 후배들을 이끄는 리더십의 위력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는 지동원(22·선덜랜드), 손흥민(21·레버쿠젠) 등 일취월장하는 후배 공격수들이 대신할 수 없는 부분이다. 올림픽팀 멤버들을 주축으로 삼아 브라질 월드컵 본선을 준비 중인 홍 감독에겐 여전히 박주영이 필요하다.

 문제는 박주영의 경기 감각이다. 아르센 벵거(64) 아스널 감독이 일찌감치 박주영을 ‘전력 외 자원’으로 분류한 가운데, 선수 자신도 함부르크를 비롯한 독일 분데스리가 클럽들과 이적 협상을 하고 있지만 시간이 충분치 않다. 분데스리가는 10일 새 시즌에 돌입했다. 대부분의 클럽이 전력 구상을 마무리한 상황에서 뒤늦게 새 팀에 합류할 박주영이 충분한 출전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 홍 감독이 페루전 직후 “소속팀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선수는 대표팀에 부르지 않겠다”고 강조한 건 박주영에게 ‘하루빨리 이적을 마무리 짓고 주전 경쟁에 전념하라’는 신호를 보낸 걸로 해석할 수 있다.

 다수의 축구인은 “그래도 우리나라에 박주영만 한 공격수는 없다”고 말한다. 차범근(60) 전 축구대표팀 감독도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수원 삼성 시절 FC서울과 경기를 하면 우리 수비진의 빈틈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주영이를 막지 못해 늘 머리가 아팠다. 주영이는 현역 시절의 나처럼 공간을 찾아 들어가는 움직임이 탁월하다”고 칭찬했다.

송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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