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월남 속의 한국|이규현<본사편집국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월남에 장기간 체재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조금도 신기할 것이 없겠지만, 오랜만에 수일간 주마간산식으로 다녀오는 여객에게는 월남 속에 부각된 한국의 이모저모가 격세지감을 주지 않을 수 없다. 1956년에 한. 월간에는 국교가 맺어졌는데 2년 후에 이승만 대통령이 그곳을 방문할 때만해도 월남은 한국인에게 거의 미지의 나라였다.
수행기자들이 귀국 후 보고강연을 할 때에도 월남이란 어떤 나라냐 하는 내용으로 긴 시간을 소비해야 했었다. 국군이 파견되기 전에는 한국인이라고는 작은 규모의 대사관 직원들과 몇몇 교포들이 외롭게 살고 있었다.
5만명의 국군과 2만명의 기술자와 노무자가 나타났을 때부터 월남인들은 갑자기 「따이한」을 보고 듣고 느끼게 된 것이다.
「사이공」 의 어느 영어신문에 한글로 된 광고가 실린 것이 눈에 뛴다. 모두 영문활자로 된 광고난 속에 「새 소식」 이라는 제목 밑에 철자법도 부정확하게 서툰 솜씨로 「펜」 글씨를 써서 동판을 뜬것이다. 내용인즉 매달 두 번씩 인천과 부산으로 싸게 화물을 수송해 준다는 운수대행업자의 광고였다. 억세게 벌어서 마련한 것을 귀국할 때가 돼서 한가지라도 더 가지고 돌아오려고 땀을 빼는 동포와 그에게 도움을 주고 돈을 버는 업자를 상상하고 웃음이 나왔다.
「탁스·빌딩」 속의 상아 세공 등 선물을 파는 상점을 기웃거리니까, 점원이 한국어로 값을 말해준다. 몇 가지 만져보고 『비싸군』하고 혼자 소리를 했더니, 점원은 『쌉니다』 하고 애교를 떤다. 10년 전에만 해도 불어가 아니면 꼼짝도 못하던 이 나라에서 이제는 「호텔」에서는 물론이고, 정부의 고급 관리들도 상당히 영어를 하게 됐고, 영어 신문도 두 가지나 나오고 있으며 한국어가 아마 제2외국어쯤으로 돼 있는지 모른다. 적어도 상인들에게는 그런가 보다.
저녁에 번화한 「투도」가를 산책했더니, 어떤 「바」 문 앞에서 여자가 말을 걸어오면서 붙잡으려고 한다.
그를 피하며 지나가자 대뜸 하는 말이 「김치」다. 대개 어떤 외국에 가든지 우리는 일본인으로 오인돼서 화가 나는데 역시 월남서는 황인종인 외국인을 보면 우선 한국인으로 보이는 모양이니 파월 동포들의 덕을 보는 셈이다.
맹호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퀴논」의 공군기지에서 「사이공」으로 가는 수송기 편을 기다리느라고 몇 시간을 보내게 됐다.
공항에서 지루하게 기다릴 것 없이 동포가 경영하는 「터키」 탕에 가서 땀이나 씻고 오자는 동행자의 제의로 공항 주변의 거리로 나섰다.
첫째로 간 「터키」탕 집에서 접수하는 월남여자들 사이에서 한국 여성이 응대를 해 준다. 30대의 상당한 미인인데 이 집의 지배인인 모양이다.
미안하지만 초만원이라서 몇 시간 기다려야 한단다. 한국여성의 이와 같이 씩씩한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동포가 한다는 「터키」탕과 음식점을 잠깐 동안에 또 두어 집 다니고 냉면을 먹었다. 벽에 붙은 「메뉴」는 서울의 대중식당의 그것과 다름없었고 냉면 맛도 제법이었다.
영업은 모두 성황이었다.
이와 같이 동포들이 호경기를 구가하는 반면에는 한국인들의 불미스러운 행동에 관한 잡음도 적지 않이 들린다.
「어글리·코리언」에 관한 이야기는 한이 없지만, 흔히 웃음거리로 전하는 것은 월남여자들이 만삭이 된 배를 안고 대사관을 찾아와서 『내 남편을 찾아달라』고 애소 한다는 이야기다. 대한 남아들이 한때를 즐기고는 자기 자손을 남기고 뺑소니 치는 일이 꽤있는 모양이다.
전쟁의 부산물이라고는 하지만, 성급히 한몫 보자는 사람들의 몰지각한 행위로 선의의 전체의 이름이 더럽혀지는 일이 가슴 아프다. 특히 『이제는 월남경기도 한물갔다』는 이즈음월남에다 한국을 심는 모든 동포들이 유종의 미를 거두고 돌아오거나 현지 지역사회의 환영받는 성원으로 남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