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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순간의 이미지 … 사물의 저편을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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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수명 시인은 자선시 ‘나무에 올라갔는데’에서 구불구불 휘어지는 나무의 움직임과 생성의 기운을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시 - 이수명 ‘나무에 올라갔는데’ 외 17편

다음은 시인 이수명(48)의 시 쓰기 전략이다. 우선 오감을 활짝 연다. 그러면 눈 앞에 사물들이 갑자기 툭 튀어나올 것이다. 부러진 나뭇가지일 수도 있고, 의자에 난 작은 상처일 수도 있다. 그것들을 낚아채 책상 위에 올린다. 시어를 눈덩이처럼 굴려보고, 다시 마른 오징어처럼 바짝 건조도 시켜본다. 언제나 한 번에 쓰이진 않는다. 왜냐하면 시인은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 궁금증이 날로 커지면 어느 순간 사물을 둘러싸고 미지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게 시다.

 “도구가 별로 필요 없어요. 그 날, 그 순간에 눈에 들어오는 이미지를 갖고 ‘생성’ 해요. 어제 했던 작업의 연장이 아니라 매일 새롭게 쓰는 거죠.”

 그래서일까. 2009년 미당문학상 수상자이자 예심위원인 김언 시인은 “실험시인으로서 동어반복을 하지 않는다. 전범이 될 만한 사례”라고 평한다. 등단 20년 차, 다섯 권의 시집을 펴냈고, 시론집과 연구서, 각종 번역 활동까지 숨가쁘게 달려왔다. 감각이 마모됐을 법도 한데 시인의 살갗은 여전히 예민하다.

 “갈수록 더 자유로운 것 같아요. 좀 더 근육들이 편하게 움직인다고 할까요. 들숨과 날숨의 긴장도를 의식하지 않고 작업을 할 수 있게 됐어요.”

 생각건대 그의 시가 동어 반복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건 시에 개인사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신상이나 가족, 주변 인물에 관심이 없다. 시의 주인공은 사물과 현상이다. 눈에 보이지만 쉽게 흘려 버리는, 그래서 시인이 숨결을 불어 넣어 되살릴 수 있는 것들 말이다.

 이번 후보작에도 죽어있던 사물들이 시인의 탐색을 통해 다시 태어난다. 이런 문장들. ‘거기 셔츠 속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곡선이 되고 직선이 되는’(셔츠는 죽는다), ‘이 트럭은 지나간다. 빵이 익거나 빵이 상하는 동안’(이 트럭), ‘전단지들이 흘러다닌다. 흘러다니다가 아무 데나 붙어버린다’(그대로).

 “도대체 왜 모두 셔츠를 입고 돌아 다니는지, 왜 낯선 사람이 전단지를 나눠주는 것인지 보고 있으면 의문이 생겨요. 하지만 끝내 알 수 없어요. 해석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인간의 판단으로 세계를 가리는 것이에요. 기묘하고 현명한 우주를 왜곡시키는 거죠. 판단하지 않고 보고 싶어요.”

 시를 쓸 때는 ‘영원히 모르는 사람’이고 싶다는 그가, 자신의 주의·주장을 내세워야 하는 비평가이기도 한 것은 참 신기한 구석이다. 예심위원들은 “시와 시론을 겸하면서 양쪽 다 어느 경지에 이른 몇 안 되는 시인”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시인은 “산문을 쓰면 논리적 사유에서 오는 통찰의 즐거움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유를 넘어서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 ‘시’고 ‘자유’라고 했다. 두 세계를 넘나드는 이수명의 이런 성실함이 여전히 그를 언어의 첨단에 서 있게 만든다.

글=김효은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수명=1965년 서울 출생. 94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새로운 오독이 거리를 메웠다』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 등. 시론집 『횡단』. 현대시작품상·노작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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