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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연구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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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25일에 있은 고대 졸업식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은 박성의교수(53·고대민족문화 연구소장)는 다음날 아침에도 그의 연구실에 앉아 있었다.
박 교수는 모교이며 재직중인 고려대로 부터 문학박사학위를 받은 첫 인물이 된 것이다.학위논문 『구운몽의 사상적 배경 연구』는 원고지 7백장에 불과한 비교적 짧은 논문이지만 이에 덧붙인 부논문『한국 고전문학 배경론』은 2천6백장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이다. 즉 주논문은 부논문의 일부이며『한국 고전문학 배경론』이야말로 평생동안 증보해 갈 그의 연구과제인 것이다.
박 교수에 있어서 이번 문박학위는 17년간 고생해 온 집념의 결정. 나이 30이 넘어서 학업을 마친 뒤 내내 이「배경론」한가지에만 골몰해온 것이다. 사기와 문집, 그리고 사상적 저술과 중국문학까지 두루 섭렵해 우리 고전문학의 배경을 푹 넓게 구명하는 작업이란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니다.
『이제사 학문의 시발점에 들어선 것 같다』고 말하는 박 교수는 위장병이 고질로 됐다고 토로한다. 주름이 엉성하게 퍼진 까슬한 얼굴이다. 운동이 너무 부족했다면서 『이젠 건강을 회목해야 좋은 논문도 나올 것 같다』고 말한다. 난로 하나뿐인 연구실은 영 냉기가 가시지 않는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의 고전문학작품에 대한 사상적 배경을 다룬 논문이 지금까지 없었던 만큼 자기의 작업이 우리민족 사상의 탐구활동에 어떤 도움이 되길 바란다.
우리 고전문학작품들이 사상적으로 모호한 것들인가. 또 일관하여 흐르는 어떤 정신적인 기조는 없는가. 박 교수는 이러한 문제를 탐구함에 있어서 서포 김만중의『구운몽』을 일예로 놓고 그 사상적 배경을 천착한 것이다.
박 교수는 이 논문에서『한국사상의 화합성』을 한층 강조하고 있다. 신라시대로부터 한국 고유의 신앙인 무격사상과 도선적 사상, 그리고 불교사상이 합쳐진 것으로 본다
특히『유·불·도의 삼교일치설』은 의천, 기화, 서산대사, 무경, 묵암등 승려와 김시습, 이이, 노수신, 허균등 유가, 그리고 도선파 최치원이 이미 주장하고 있음을 상기한다.
더 구체적으로 서포의 어머니 윤씨 부인의 신앙생활을 예거했으며, 서보자신의 사상적 화합성을 살핀다. 그리고 이 작품속에서 유·불·도·무외에 경천사상도 찾아내고 있다. 『서포의 사상의 한말로 말하여 사회관은 유교적이고, 종교관은 불교적이며, 자연권은 도교적이고, 인생권은 유·불·도·무의 화합적인 것』이라고 박 교수는 매듭지어 풀이한다.
이와 같은 한국사상의 화합성은 최길성, 홍일식씨와의 공동연구『한국문화에 끼친 원시종교의 영향』에도 나타나고 있다. 『우리의 원시종교는 우리민족성 모양으로 외래종교에 대해 처음엔 자세를 취한다. 아류·시종의 자리에 있다가 어느 시기에 이르면 외래 종교의 존엄은 유명무실해지고 신자들도 우리 토속신을 주로 모시게 되는 실리적 입장을 획득한다』고 우리 민족의 은근과 끈기를 내세워 말한다.
우리나라 사착사상의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는 [동학]사상도 유·불·도·무가 화합된 것이지만, 새로운 외래사상인 기독교를 배척하고 싶으면서도 『도는 같으나 이는 다르다』는 정도로 수용하는 것이다.
또한 [탈춤], [야유희], [별산대 놀이], [오광대]등 민속놀이에서 보이듯이, 이것들은 단순히 풍자·해학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며 외래신의 표상인 양반·노승을 철저히 깔아 뭉갬으로써 [민족심리]를 표출하는 것이다.
따라서『우리고전에 맥맥히 흐르는 주류는 뚜렷한 주체의식이며 근대화의 정신적 바탕이 될 수 있는 외래문화에 대한 수용태세로서의 화합사상도 갖춰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박 교수는 말한다. 또한 그는 원시종교는 우리의 중심사상이라고 강조한다. 『일인들이 한국근대화의 정신적 장애로 평가한 것처럼 철저히 나쁜 것만도 아니다. 부락제만 하더라도 거기에는 부락의 풍습을 전하며, 이웃과의 화합과 인보단결을 이룩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등 장점도 많다.』 <공종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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