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장株 가격산정 '숨어있던 폭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SK 사건의 최대 쟁점은 비상장 기업의 주식 가격을 어떻게 매겨야 하는가다.

오너인 최태원 SK㈜회장이 자신이 보유한 ㈜워커힐 주식을 SK C&C(옛 대한텔레콤)와 SK글로벌에 매각할 때 지나치게 높은 값을 받아 부당이득을 챙기지 않았느냐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상장 기업이면 주가대로 팔면 되지만, 그런 시세가 없는 비상장 기업은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해당 기업들은 법대로 했다고 주장하고, 시민단체 등은 오너의 필요에 따라 값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고 반박한다.

◇4년 전부터 논란 계속=이런 논란은 SK가 처음이 아니다. 1999년 삼성이 비상장 기업인 삼성SDS의 신주 인수권부 사채(BW)가격을 주당 7천1백50원으로 책정했을 때 시민단체 등이 '헐값 매각'이라고 주장했고, 삼성은 세법 규정대로 책정했다고 반박했다.

같은 해 LG화학이 보유하고 있던 비상장 업체인 LG석유화학의 주식을 허동수 LG정유 회장 등 대주주들에게 매각했을 때도 같은 논란이 있었다.

◇왜 쟁점인가=비상장 기업이라도 시세가 형성돼 있으면 그 시세대로 매매하는 게 원칙이다. 가령 장외시장에서 대량 거래돼 시장가격으로 인정된다면, 이때의 가격이 비상장 기업의 값이다. 그러나 비상장 기업들은 대부분 이런 시세가 없다.

그래서 기업들은 상속.증여세법에 나와 있는 기준에 따라 기업가치를 매긴다. 과거에 순이익이 얼마나 났는지를 반영하거나 기업의 자산가치를 따져 값을 정한다. 기업들이 "법대로 했다"는 주장은 이에 근거한다.

그러나 기업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잘 모르는 사람들끼리 주식을 사고팔 때는 대개 이렇게 계산하지 않는다. 장차 얼마나 이익을 올릴지, 잠재력은 얼마나 되는지도 따진다. 또 같은 업종의 라이벌 기업 주가와 비교하기도 한다. 시민단체 등이 SK의 경우 워커힐과 신라호텔을 비교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또 시장에서 대량 거래돼 시세가 형성돼 있다면 이게 기업가치다. 시민단체는 삼성SDS의 경우 직원들이 인터넷을 통해 거래한 가격이 5만여원이라면서 공격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 측은 소량이 거래됐기 때문에 정상적인 시장가격이라고 볼 수 없다고 비판한다.

◇어떻게 풀어야 하나=기업이나 시민단체의 주장 모두 일리가 있다는 게 세법 전문가들의 견해다. 문제는 법대로 했는데도 기업들이 일방적으로 매도 당하는 분위기다.

금융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세법대로 했다면 전혀 문제될 게 없다"며 "검찰이 위법으로 걸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장 법률사무소의 한 변호사는 "시민단체의 주장이 맞다면 아예 세법의 관련 조항을 없애야 한다"면서 "세법에 규정이 있는 데도 세법대로 하지 말라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산동회계법인의 한 회계사도 "세법 규정은 오랜 검토 끝에 만들어진 것"이라면서 "내 맘에 안 든다고 해서 법을 어길 수는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김영욱 전문기자
사진=변선구 기자<sunnin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