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정경화, 여유 넘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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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씨가 포레의 소나타를 연주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사진 대관령국제음악제]

지난 달 31일 오후 5시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 대관령국제음악제 저명연주가시리즈의 하나인 ‘오마주 투 바흐’는 바흐(1685~1750)에게 바쳐진 성소였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3번, 5번, 6번을 차례로 연주한 첼리스트 세 명은 수도승처럼 음악의 아버지에게 경배했다. 이날 무대에 오른 세 연주자는 제 몸을 악기 삼아 자신이 느낀 바흐, 자기가 살아온 세상 얘기를 각이 또렷이 선 목소리로 들려주었다.

 캐나다 출신 게리 호프만(57)은 단순명료한 바흐를 직설했다. 단단하고 평온한 음조는 흔들림 없는 믿음의 기도처럼 음악당을 울렸다. 리투아니아 출신 다비드 게링가스(67)는 격정과 흐느낌을 오가는 낮은 으르렁거림으로 청중 가슴을 훑어 내렸다. 중국 출신 지안 왕(45)은 대지 위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재빠르고 우아한 몸놀림의 춤꾼처럼 공기를 품고 노래했다.

 같은 날 오후 7시 30분,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65)씨가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50)와 등장하자 무대가 꽉 찼다. 손가락 부상으로 연주를 접었던 지난 몇 년의 공백은 그에게 선물이었던 듯싶다. 청중을 내리누르는 강인한 여사제로서의 카리스마가 옅어지고 음악을 즐기고 기뻐하는 아이 같은 순수함이 빛났다.

 모차르트 ·브람스 ·포레 의 소나타를 다루는 정경화의 바이올린은 ‘용납하지 못할 것이 무엇인가’ 어깨를 으쓱 올린 것처럼 제스처 풍부한 난만함으로 객석을 휘저었다. ‘정경화답다’라 말할 수 있는 위엄과 당당함이 연륜 속에 새 물결을 이뤄 찰랑거렸다. 앙코르 곡으로 고른 드비시의 작품 제목처럼 ‘아름다운 밤’이었다. 

평창=정재숙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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