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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필수 되는 한국사, 부담 덜어주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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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홍준
논설위원

우리 사회에서 대학입시(대입)만큼 강력한 게 있을까. ‘대입에 나온다’ 또는 ‘대입에 반영한다’ 같은 내용만 들어 있어도 학생이나 학부모 입장에서 여기에 눈이 갈 수밖에 없다.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 학교폭력 기록, 봉사활동, 인성교육, 학교체육활동 등. 어딘가에서 한번 들어본 듯한 ‘대입 반영’ 레퍼토리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지난달 말 대입 전형에 한국사 과목을 반영하기로 결정했다. 몇 가지 방법을 놓고 이달 말까지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요즘 학생들의 역사 무지가 심각한 지경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대입 필수 반영이 논의됐고, 여론 역시 여기에 힘을 더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런 필수 반영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분명 있다. 무엇보다 대입에 반영되면 모든 학생이 한국사 시험에 매달려야 하는 시험 부담이 첫 번째다. 이런 부담 때문에 학생들이 사교육에 의존하는 현상이 벌어진다는 우려가 그 다음이다. 교실에서 가뜩이나 재미 없게 가르치는 한국사가 입시과목이 되면 암기과목으로 전락한다는 걱정도 뒤따른다. 최종적으로는 과연 이런 식으로 대입에 반영하는 게 교육적으로 타당하냐는 지적도 있다. 교육당국은 한국사 교육의 필요성이나 취지에 공감하는 여론을 반영하면서도 시행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이런 우려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수험생의 시험 부담이 늘어나는 문제는 단순히 필수과목 하나를 더 추가하는 문제 정도로 받아들여져서는 곤란하다. 학생 입장에선 과목이 늘어나든, 줄어들든 부담 총량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점수와 순위 산출, 합격자 선정이라는 대입 과정에서 오히려 과목이 적은 게 더 큰 심적 부담을 줄 수도 있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서열(rank)에 있다. ‘평균과 표준편차-표준점수-백분위점수-등급’이라는 산출 과정은 남을 밟아야 내가 사는 시스템이다. 여기서는 시험이 쉽게 출제되어도 전혀 반갑지 않고, 어느 한 과목이라도 삐끗하면 최저학력기준선 이하로 굴러떨어진다. 표준점수대별 누적인원까지 나오기 때문에 이런 시험은 학생들의 스트레스 지수를 높인다. 여기에 대학이 한국사 시험 점수를 국어·영어·수학 등 타 과목 점수(표준점수 또는 백분위점수)와 합산해 합·불합격자를 가리게 된다면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같은 출제기관은 대학들이 서열을 잘 가려 선발할 수 있도록 한국사 시험의 변별력을 고민하게 될 것이다. 변별력 때문에 시험 문제를 꼬아 내거나 기본적인 암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손댈 수 없는 고난도 문제를 출제하는 건 기본이다.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이 2011년 5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수능과 연계되면 교과서 내용이 시험문제 장부처럼 된다. 수능에서 변별도를 중시하니까 암기 대상으로 사실만 나열한다. 수능의 틀에 들어가니 역사교육이 죽는 결과가 됐다”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당시 이 위원장은 한국사 과목 필수화와 관련해 수능과 연계되는 움직임에 대해 우려했다.

 한국사를 필수로 하는 목적이 자라나는 미래 세대에 역사를 잘 알게 하자는 것이지 단편적인 역사적 사실을 얼마나 잘 아는지 테스트해 일등부터 꼴등을 내자는 건 아니잖나. 그렇다면 ‘남을 밟고 잘해’보다 ‘이 정도면 충분해’라는 패러다임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 한국사 교사들과 전공 학자들이 최소한의 요건(minimum requirement)을 설정해 이를 시험 제도에 도입하는 방안은 어떨까 생각한다. 일종의 통과 또는 비통과(pass/fail) 시험이다. 굳이 수능일 당일 한국사 시험을 치를 필요는 없다. 일찍부터 한국사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라면 국사편찬위원회가 주관하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역시·歷試)을 미리미리 봐 일정 수준(급수)만 따면 이 시험에서 통과한다. 시험 당일엔 한국사를 볼 수도 있고, 이 성적 역시 최저 등급을 설정하면 된다. 물론 이 방식이 모든 문제를 해소할 순 없을 것이다. 다만 역사를 역사답게 가르치는 환경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순 있다고 본다. 이제 침묵하고 있는 역사학자들이 답할 차례다.

강홍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