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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의 도심을 기습한 새벽불길 4시간|내려진 셔터에 두손든 소화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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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도시마다 고층건물이 들어서고 석유등 유류가 연료로 일상생활에 쓰여지는데도 소방도로가 불비하고 소방장비가 낡아 큰 화재가 날 때마다 진화작업을 제대로 못해 큰 피해를 내고있다.
17일상오 반도·조선[아케이드]의 큰불로 낡은 소방차가 꿈지럭거리며 화재발생 10분후에야 나타났으며 현장주변에 「팔레스·호텔」신축공사장 자재더미가 막혀 소방통로가 전혀 없었다.
화재현장 주변에 13개의 소화전이 있었으나 물이 얼어붙어 물길이 제대로 뻗치지않아 달려온 소방경찰은 약 30분동안 진화작업을 하다가 완전히 탈 때까지 멍청히 불구경하는 기현상을 빚었다.
뿐만아니라 「아케이드」의 건물구조도 불에 대해 전혀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 다닥다닥 붙은 점포로 이루어진 이 건물은 문을연지 7년이 지났어도 방화구역을 설정하지 않았고 고급점포이기때문에 주단을 깔고 벽체가 우단으로 되는 등 가연성물질이 많은데다 출입문「셔터」가 열리지않고 건물의 창틀이 작아 소방관의 진화작업에 큰 지장을 준 것이다.
이같은 큰불에 대비한 서울의 소방차량은 펌프차 28대, 사다리차 3대, 물탱크차 33대, 화학차 5대등 모두 69대뿐으로 이것마저 10년이상 낡아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못하는 고물들이다. 더구나 유류 연료화로 인한 화재에 대비한 화학차는 현대식 장비를 갖춘 것이 단 1대도 없으며 현재의 5대의 화학차도 과거의 「펌프」차를 개조 변경한 것으로 그 기능이 엉망인 것이다.
치안국 집계에 따르면 작년 1년동안의 화재는 총 4천1백81건으로 2백1명이 사망, 8백9명이 부상당해 재작년보다 6·5%가 늘어났는데 이중 40%인 1천7백51건이 서울에서 발생, 화재의 도시집중이 현저히 나타났고 화인도 ①유류 7백77건 ②전기 5백27건 ③아궁이 4백37건으로 나타나 유류로 인한 화재에 대비한 소방장비의 보충이 시급함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유류에 대비한 현대식 화학차를 비롯, 펌프차등 76대를 서독에서 차관으로 들여올 계획을 세우고 올해 예산에 그 착수금으로 2천4백만원을 확보했다.
고가사다리차 2대, 화학차(흠차) 2대, 「펌프」차 A형 31대·B형 4대, 물「탱크」차 37대등 모두 76대를 새로 들여올 계획인데 차관액수는 7억2천만원이며 5년상환에 연 8%의 이자로 돼있다.
영하 15도의 새벽에 기습한 불길은 선잠에서 깬채 달려온 점포주인들과 밀어닥친 소방차·출근길의 차등이 한데엉켜 큰 혼란을 빚어냈다. 을지로입구·시청앞·소공로의 길이 막히는 바람에 출근길 교통이 마비되어 광교·을지로2가 퇴계로까지 차가 밀리는 소동을 벌였고 물을 뿜지못하는 소방차의 호스를 원망하는 피해자들의 발버둥속에서 연기는 수색에서도 보일만큼 뻗쳐 「러쉬·아워」의 시민을 놀라게 했다.
이날 불은 발화 약 10분뒤에 김홍식씨(소공동89)가 119에 신고, 소방차가 출동했으나 「아케이드」는 정문「셔터」가 내려져 있었고 사다리차등 장비부족으로 신축한 5층 건물에 물길이 닿지않아 진화작업은 하나마나였다.
길이가 약 80m되는 「아케이드」건물의 북쪽에는 「뉴코리아·호텔」 중국요리점 금문도 대한일보 신축공사장등이 있어 소방차의 진입로가 좁아 소방호스가 닿지않았으며 조선호텔 쪽의 외벽에는 창문이 작아 물길을 퍼부을 수 없었다.

<반도-조선 아케이드>
국제관광공사가 64년1월에 연건평 1천6백평으로 개관한 「아케이드」는 69년7윌과 10월의 설계변경으로 1천6백80평을 증축했다. 1, 2층에 220개 점포가 들어있으며 준공검사를 마치지않은 증축부분의 1백30개 점포의 일부가 69년말 임시개관했다.
이날 불탄 「아케이드」는 1, 2층에는 금은방 19개, 양품점 1백12개, 수예점 10개, 포목점 6개, [카메라]점포 2개, 공예사 9개등으로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가장 고급의 상가로 알려진 곳.
경찰은 피해액을 약 4억원으로 보고있으나 각종 보석·카메라·양품·양복지·공예품과 숨겨둔 부정 외래품등 값진 물건들이 쌓여있어 상인들은 피해액이 15억원이 넘는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얼어붙은 소화전>소화작업
불이 난 10분후인 상오 6시15분쯤 소방차 1대가 현장에 도착, 발화지인 「팔레스·호텔」 현장사무소옆에 붙은 소화전을 녹여 첫 물길을 댔다.
이어 달려온 10대의 소방차가 상오 6시35분쯤 5개의 물줄기를 불타고있는 상점쪽으로 돌렸으나 화재현장근처 13개의 소화전은 영하 15도의 강추위에 얼어붙었고 그나마 녹인 소화전엔 공사장에서 내다버린 나무조각등으로 막혀있었다.
상오 6시50분쯤까지 힘없이 내뿜던 물길은 상오 7시가 되자 완전「스톱」. 40여대의 소방차와 70여명의 소방원은 불길만 쳐다보고 있었다.
상오 7시반쯤 고층건물소방차 1대가 무섭게 치솟는 불길에 물길을 뿜다가 가버린후 상오 8시쯤 반도-조선「아케이드」는 완전히 불길에 싸여버려 소방경찰은 전소되기만 기다리는 실정이었다.
상오 9시30분쯤 화재현장의 사령차 확성기는 『탈것은 모두 탔다』고 알렸고 타다남은 「아케이드」건물에선 검은 연기만이 뿜어나왔다.

<화재출동소방차 시내버스와 충돌>
17일상오 7시25분 반도·조선「아케이드」에 출동중이던 영등포소방서 3호 소방차가 영등포동5가 시장 앞길에서 양평동으로 가던 서울 영5-2958호 좌석「버스」(운전사 고수복·44)와 충돌. [버스]승객 김창순씨(26·여·영등포3가24)등 5명이 중경상을 입고 소방차는 「펌프」장치가 부서져 출동하지 못했다.

<상인과 수습책논의>대책위원회 구성
국제관광공사는 부총재 신만재씨를 위원장으로 대책위원회를 구성, 「아케이드」번영회장 김윤두씨등 상인들과 수습책을 논의하고 있다.

<불길에 뛰어드는 상인 제지하는 경관|"이젠 망했구나" 발버둥치는 보석상|호텔서 자던 외국인 내의바람 탈출도>
불이나자 기동대 2개 중대가 출동, 조선호텔쪽과 반도호텔쪽 「아케이드」입구의 교통을 완전차단, [뉴스]를 듣고 달려온 5백여명의 상인들과 시민들의 접근을 막았다.
상오 11시쯤 반도-조선「아케이드」 1층 70호 호산나양품점 주인 임명희씨는 병원서 치료받다가 불났다는 소식을 듣고 점포로 들어가려다 경찰의 제지를 받아 그 자리에 주저앉아 대성통곡.
2층 251호 AQ양복점 주인 김학순씨(38)는 불길이 번져나오자 『소방차는 무엇하느냐』고 고함을 치며 물통을 찾아 허둥댔다.
신신보석상 주인 김기일씨(49)는 금·은·보석이 얼마나 있는지 자기도 모른다면서 『이제는 망했다』고 한숨.
불길이 잡히자 상인 1백여명이 불탄 점포자리로 몰려들었으나 경찰은 타다남은 상품과 보석류등 귀금속의 도난을 막기위해 이날 하오 2시까지 현장접근을 못하게하여 상인들은 타다남은 물건이라도 찾게해 달라고 아우성.
화재직후 1차 임시회의룰 가졌던 상인들은 하오 2시쯤부터 반도호텔 별관 4층에 모여 각자 점포이름등을 적은 명찰을 앞가슴에 달고 다니기도 했다.
불길이 반도·조선「아케이드」를 완전히 휩쓸자 인접한 「뉴 코리아·호텔」과 반도호텔 종업원들은 비상계단에 줄지어서 물통을 「릴레이」식으로 날라다 불길이 「호텔」에 번지는 것을 막기위해 안간힘을 썼고 「아케이드」의 불길이 치솟자 예비군복 차림의 청년 7∼8명은 소화전과 물통을 들고 조선호텔 뜰 뒤에있는 원구단(사적157호) 보호작전에 나서기도 했다.
불이나 검은 연기가 소공동일대를 감싸자 반도호텔과 「뉴 코리아·호텔」에서 잠자던 외국인등 2백여명은 잠결에 짐을 싸들고 아래층으로 달려나오는등 소동을 벌였다.
김일환 관광공사총재는 소방차가 불길을 잡자 이들을 「로비」에 모아놓고 안심시키느라고 진땀을 뺐다.
17일아침 15억원의 피해(상인들 주장)를 낸 반도·조선「아케이드」 전소사건의 방화지점인 「팔레스·호텔」은 무허가로 제멋대로 신축을 하다가 불은낸 사실이 밝혀져 서울시 건축행정의 잘못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 무허가 건축물은 건축허가감독관청인 서울시청의 정면 3백m도 되지않는 거리에 있다. 이 금싸라기땅에는 경한산업(대표 서봉희·중구소공동21)이 약 2억원을 들여 작년 10월에 무허가로 15층짜리 「팔레스·호텔」을 삼환기업(대표 최종한·50)청부로 착공하고 있다. 현재 지하 2층의 골조공사가 거의 끝났으나 무허가건물이 말썽이되자 69년12월17일 공사를 중단하고 있다.
서울시 건축당국은 「팔레스·호텔」 신축허가관계가 1건도 접수된 일이없다고 밝혔으나 어떻게해서 15층짜리 「매머드·빌딩」이 무허가로 건축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우리도 모른다』며 발뺌을 하고있다.
그밖에 신축공사장과 「아케이드」사이에 있는 대지 50평, 건평 1백평짜리 낡은 무허가 2층건물(주인·김종두·33)도 이번 화재의 징검다리 노릇을 했다.
이 건물은 일제때부터 있던 건물로 그동안 「아케이드」측에서 방화관계로 수차례에 걸쳐 철거교섭을 벌였으나 서울시나 관할 남대문서는 아직까지 이에대한 조치를 하지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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